설교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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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지금부터 약 150년 전이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잔이라는 어린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13살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계속 다닐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잔은 어쩔 수 없이 벽돌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자기 밥벌이를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잔에게는 남다른 믿음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기도 생활도 열심히 하고 일하면서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린 잔에게 가슴 아픈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입구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닥이 질퍽질퍽 거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성도들 가운데는 비가 오면 아예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에는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부자도 있었습니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또 멋있는 마차를 끌고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회 입구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 비만 오면 질퍽거리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린 잔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린 잔은 기도하는 가운데 결심했습니다.
"좋다! 나라도 내 교회 입구를 벽돌로 한 번 멋있게 포장해 보리라!"
그 당시 잔이 벽돌공장에서 받는 일당은 7센트였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식대를 제하고 또 생활비 일부를 제하고 나면, 꼭 하루에 벽돌을 한 장 살 수 있는 돈이 남았습니다. 잔은 그 돈으로 벽돌을 매일 한 장씩 샀습니다. 그리고 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교회에 들러 그것을 가지고 교회 입구를 깔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잔이 벽돌로 교회 입구를 포장하는 데는 약 2년의 세월이 걸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은 그 세월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기뻤습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살맛이 났습니다. 그의 발걸음은 하늘을 나는 것처럼 몹시도 가벼웠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열흘이 지났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매일 저녁 벽돌을 가져와서 교회 입구를 포장하는 잔의 모습을 교회 어른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어찌 그 모습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드디어 무디었던 어른들의 마음이 움직여졌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어른들의 손으로 교회 입구는 깨끗하게 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교회 안까지도 새롭게 단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잔의 삶을 무한히 더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큰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체신장관까지 역임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불리어지는 잔 와나 메이커(John Maker, 1838∼1922)입니다.
▶어느 마을에 칠푼이가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큰 금 덩어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땅 속에 깊이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여기에는 절대로 금 덩어리가 묻혀 있지 않음. 칠푼이백."
그 마을에 사는 팔푼이가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몰래 그것을 파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또 써 붙여 놓았습니다.
"나는 절대로 금 덩어리를 훔쳐가지 않았음. 팔푼이 백."
나중에 칠푼이가 와 보니까 금 덩어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는 속이 상해서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구야! 누가 내 금 덩어리 훔쳐갔어? 팔푼이 한 사람만 빼놓고 모두 다 나와!"
옛날 유대인들도 보화를 땅 속에 감추어 두곤 했습니다. 유달리 전쟁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또 도적이나 강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보화를 감추기 위해서는 땅 속이 제일 적합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장사했습니다. 그만큼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땅을 파고 그 속에 깊이 숨겨두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의 땅은 요즘 말로 하면 금고의 역할을 해왔던 것입니다.
▶13세기에 이탈리아의 유명한 탐험가였던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라는 사람이 그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중국으로 왔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17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자기의 조국 이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유명한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임종할 때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다그쳤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자네의 책에서 도무지 우리가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들만 잔뜩 기록해 놓지 않았나? 이제라도 자네가 우리에게 진실을 밝혀주면 좋겠네. 자네가 쓴 모든 내용이 자네의 상상에 의해서 꾸며졌다는 사실을 말일세."
그 때 마르코 폴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닐세. 내가 책에 쓴 것은 모두 진실일세. 사실 나는 내가 보고 겪었던 것의 절반도 채 기록하지 못했다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상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신실하십니다. 거짓말하실 분이 아닙니다. 천국은 반드시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단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발견되지 않을 뿐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택함 받은 우리들에게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이 교회에서 천국에 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인 월요일이었습니다. 어떤 교우의 가정을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교회의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을 만났습니다. 집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이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제 천국에 대한 설교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천국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씀을 안 해 주셨습니다.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집사님, 저는 지금 어떤 교우의 가정을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 교우는 지금 병들어 누워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집사님께서 그를 위해서 양식을 사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양식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십시오. 그 뒤 그 가정에 있는 성경을 받아서 시편 23편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그 병든 교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천국이 보이지 않는다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 돈도 제가 다 지불하겠습니다."
그 다음 날 그 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분명히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15분간을 지내다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천국을 발견하시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교회에 안 다녀도 우리 집사람은 열심히 잘 믿으니까 나도 천국의 근처는 가겠지!"
여러분, 천국 근처가 어디입니까? 천국이면 천국, 지옥이면 지옥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아들 딸 삼 남매를 낳고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만 병들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았더니 간암 말기였습니다. 온 가족이 정성을 다해서 극진히 보살폈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아내는 혼자의 몸으로 삼 남매를 키우고 살아야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는 자기 친구를 만날 때마다 늘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편 잘 모셔! 남편 건강하도록 잘 보살피고."
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자기가 혼자 되어보니까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서러움을 깊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남편 없이 혼자서 아들 딸 기르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왜 예수님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천국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까? 천국은 너무나도 영화로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옥 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지옥의 비참함과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5:29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 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지옥은 그만큼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천국에 가기를 원하십니다. 너무나도 영화로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거듭 천국에 대해서 알기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은 남에게 빼앗길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앗시시의 성자였던 프랜시스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임종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빙 둘러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둘 때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성 프랜시스가 어린 아이와 같이 고함을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성 프랜시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지금도 창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숙한 순간에 좀 더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서 성 프랜시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책을 떨었지. 미안하네. 그러나 내가 이제 곧 천국에 가서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을 만나 뵌다는 사실을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기뻐서 그 감격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마13장에 밭에 감춰진 보화를 산 사람은 너무나도 기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를 팔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기쁨을 마음속에 소유한 사람은 세상적인 것, 시시한 것 때문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두 소녀가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앞에 예쁜 조개가 나타났습니다. 두 소녀의 손이 동시에 그 조개를 집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결국 고집이 세고 힘이 쌘 아이가 그것을 차지했습니다. 그것을 빼앗긴 아이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언짢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말도 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조개를 주웠습니다.
그런데 조개를 빼앗긴 아이의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뜻밖에도 진주를 발견한 것입니다. 얼른 자기의 품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기뻤겠습니까? 그는 친구에게로 다시금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친구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걸면서 다시금 같이 조개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또 예쁜 조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두 소녀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진주를 발견한 소녀가 기꺼이 예쁜 조개를 자기 친구에게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기쁨을 마음속에 소유한 사람은 그까짓 세상적인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옛날 이솝우화에 여우와 두루미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우에게 초대받은 두루미는 납작한 접시에 담긴 국을 먹지도 못하고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결국 두루미도 여우를 초대하여 목이 긴 호리병에 맛있는 고깃국을 담아 여우에게 줌으로 그에게 당한 놀림은 앙갚음했습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주는 만큼 받습니다. 사는 동안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의명주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 인도에 어떤 장자가 귀여운 자기 아들 옷 속에 값진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으나, 그 아이는 집을 뛰쳐나와 거지가 되어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그 구슬이 자기 옷 안에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몇 해가 지나서야 자기 집을 찾아오게 된 그 아들에게 '어째서 너는 네 옷 속에 값진 보배 구슬이 있는데도 거지 노릇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때서야 그 거지 아들은 '자기 옷섶에서 구슬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답니다.
실로 누구에게나 다 내의 명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해 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깊이 묻어두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영성이 깨어납니다.
▶인도의 수녀 테레사는 알바니아의 한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습니다. 몸집도 작았습니다. 인물도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처럼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늘 자신 스스로를 가리켜서 즐겨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가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그는 연설 가운데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I am nothing(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런 테레사가 인도의 빈민촌에 뛰어 들었습니다. 사랑을 품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버려진 사람들, 병든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뭇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랑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빈민굴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1997년 그가 죽었을 때, 인도에서 국장으로 그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 세계에 그의 장례식이 방영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겨자씨 같이 작게 시작했던 그의 삶이 놀랍도록 성장해서 큰 나무처럼 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열여섯 살 된 '나르시스'라는 소년이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그 소년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사랑을 고백하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만 물에 빠져 수선화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르시시즘'이란 단어가 유래했습니다.
이것을 어느 여자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설명하면서 '나르시시즘'이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병, 즉 '자애 병'이라고 했습니다. 이 설명을 들은 한 여학생이 '선생님 제가 아무래도 그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저는 아침마다 거울을 볼 때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거울 앞을 떠날 수가 없거든요' 그러자 선생님이 '얘야 그것은 '자애 병'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병이란다.'고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거울을 보는 이유는 자신을 보는 즐거움과 만족감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어떤가?'하는 것은 우리를 적절하게 긴장시키기도 하고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 외에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뒤에 그 모든 것을 보시고 느낀 소감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였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50명 장사꾼이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장사하러 떠났습니다. 모두 낙타를 탔습니다. 비싸고 무거운 보석들을 실었습니다. 한 명이 유대인이고 49명이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자가 쫓아 왔습니다. 50명이 의논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을 수 없으니 제비를 뽑아서 제비 뽑힌 사람이 낙타를 사자에게 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면 배부른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제비가 뽑힌 사람은 낙타를 사자에게 주고 먹을 것, 마실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물론 물건도 버려야 합니다. 혼자 걷기도 힘든 사막이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자기 몸보다 큰 낙타를 먹고 쫓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이틀 지나니까 사자가 또 쫓아 왔습니다. 49명이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49명이 모두 낙타를 주었습니다. 이제 유대인 혼자 남았습니다. 모두 마실 물, 먹을 양식, 팔 물건 모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고생하면서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또 나타났습니다. 뒤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던 49명 이방인들이 말했습니다.
<유대인아! 이제는 제비뽑을 필요가 없다. 너 혼자 남았다. 네 낙타를 주어라.>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물론이지. 어떻게 사람이 죽니? 내 낙타 주어야지.> 그리고 낙타를 주려고 뒤를 보았더니 사자가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앞에 동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가지고 가니까 물건은 적고, 살 사람은 많아서 값이 두 배로 올랐습니다. 이방인들이 물었습니다.
<유대인아! 49번 제비를 뽑았는데 어째서 너는 한 번도 안 뽑히니?>
유대인이 대답하였습니다. <너희들과 내가 다른 점은 꼭 하나다. 너희들은 안식일에 성전에 가지 않지만 나는 안식일이면 꼭 성전에 가서 랍비의 축복을 받았다.> 이 말 한 마디에 49명이 모두 하나님을 믿기로 개종하였습니다.
▶미국 10대 재벌 중에 한 분은 하이네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올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통장을 보니 1만 5천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그 돈을 모두 가족에게 주고 어디로 사라지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돈이 내 마지막 재산이다. 그 동안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 하였다. 마지막 돈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리고 그 돈을 하나님께 모두 드렸습니다. 대단한 용기였습니다.
교회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 파산한 재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화재거리가 되었습니다. 온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그에게 사업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하였습니다. 돈을 모아 주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다시 재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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