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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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꿈은 욕심이 아닙니다. 방향입니다. 노래 잘 하는 사람보다 노래를 잘 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돈을 번 사람보다 돈을 벌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보다 공부 잘 하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책을 많이 쓴 사람보다 책을 많이 쓰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꿈을 이룬 사람은 욕심도 없고 방향도 없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사람은 거룩한 욕심이 있고 일하려고 하는 방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락동에 있는 교회 교인 중에 가난한 여자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8년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꼼짝 못 하고 누워서 살아야 했습니다. 밥을 먹여 주어야 했습니다.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했습니다. 어린아이 기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아내는 가락시장에 가서 배추 시래기를 주워서 삶아서 팔아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직 피아노가 없습니다. 피아노 한 대를 사기 위하여 은행 계좌를 하나 만들어 놓았습니다. 푼푼이 모아서 피아노를 사려고 합니다. 돈이 생기는 대로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 피아노를 사게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 피아노를 구입하겠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돈을 한 푼 두 푼 통장에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배추 장사 집사님도 하루 1000원, 2000원씩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사가 안 되는 날은 200원을 넣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강사 식사 대접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강사를 대접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 집사님이 강사를 대접하겠다고 신청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난감하였습니다. 사실 그 집에는 멸치 8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강사를 모시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 국수를 끓이고 강사 국수에 멸치 5마리, 목사님 국수에 멸치 3마리를 올려놓았습니다. 강사님은 감격하여 축복기도를 울면서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났습니다.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몇 만원을 벌었습니다. 처음으로 피아노 헌금을 10,000원 하였습니다. 써야 할 때 다 쓰고 나니 1,000원이 남았습니다. 그는 1,000원으로 무엇을 할가 하다가 복권을 한 장 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수요일 저녁에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돈 1000원이 남아서 복권을 하나 샀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랜드 피아노 한 대 사요. 그리고 돈이 남으면 교회도 새롭게 이사 가요.>
목사님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복권 한 장을 책상 서랍 속에 던져 놓았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역시 수요일이었습니다. 집사님이 시장에서 입고 일다던 냄새 나는 옷을 입은 그대로 헐레벌떡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 복권 좀 보세요.> 집사님은 복권 번호를 적어 놓았었습니다. 당첨이었습니다. 수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랜드 피아노를 하고 교회도 더 넓은 곳으로 이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도 지하실에서 지상 집으로 옮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한 보상이었습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
가장 낭비하는 시간은 방황하는 시간이고/가장 교만한 시간은 남을 깔보는 시간이고/가장 자유로운 시간은 규칙적인 시간이고/가장 통쾌한 시간은 승리하는 시간이고/가장 지루한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고/가장 서운한 시간은 이별하는 시간이고/가장 겸손한 시간은 자기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시간이고/가장 비굴한 시간은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시간이고/가장 불쌍한 시간은 구걸하는 시간이고/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최선을 다한 시간이고/가장 현명한 시간은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시간이고/가장 분한 시간은 모욕을 당한 시간이고/가장 뿌듯한 시간은 성공한 시간이고/가장 달콤한 시간은 일한 뒤 휴식 시간이고/가장 즐거운 시간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고/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다./가장 행복한 순간은 꿈을 그리는 순간입니다./꿈은 욕심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이용규 몽골 선교사가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처녀를 전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는 좋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축하는 처녀였습니다.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소를 풀밭에 매놓고 예배드리러 가려고 하였습니다. 소를 끌고 나가는 데 소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어 가다 보니 땀과 먼지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소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처녀는 혼자 외쳤습니다.
<소보다 예배를....> 그리고 소 따라가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달렸습니다. 교회로 왔을 때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옷은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말 했습니다. <소보다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
선교사는 기특하여 교회 문에서 안수 기도하였습니다. <예배의 축복을 주옵소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마당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음매............> 소가 교회로 와 있었습니다. 예배는 회복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히브리어로 ‘아바드인’데 ‘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예배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입니다. 이는 ‘틈을 낸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예배드리는 사람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사이가 갈라지도록 틈을 내는 악령입니다.
▶전라도 어느 장로님 고백입니다. 복잡한 가정생활로 인하여 교회를 떠나 10여년을 방황하였습니다. 어느 날 술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술집에서 무당을 데려다가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무당이 굿을 하다 말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나요? 내 영이 그 사람 때문에 통하지 않고 있으니 그 사람은 나가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장로님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 속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떠난 지 10여년이 지났는데 예수님의 영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구나!> 그는 술집에서 회개하였습니다. 무당 말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새로운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미국 텍사스의 어떤 부자는 너무 돈이 많았습니다. 움켜쥐고만 살았습니다. 그 부자가 죽을 때 식구들이 물었습니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죽거든 황금관 속에 넣어서 묻어 달라.> 그래서 소원대로 금으로 관을 만들어 시체를 그 속에 넣어 파묻어 주었습니다. 황금 관에 시체가 들어갔다고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가요? 차라리 그 돈을 마지막으로 양노원이나 고아원에 기증하고 죽었다면 그 양노원이나 고아원에서는 동상을 만들어 놓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미국에 젠킨스 박사님에게 어느 날 죠지아 주에 있는 큰 술집 주인이며 도박장 주인이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는 돈이 억수로 많은 부자인 데 생활은 불행하였습니다. 박사님은 불행한 삶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여 주었습니다. 성경도 읽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아침 박사님이 지시하신 대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빛이 제 영혼에 가득 비쳐왔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제 마음을 바치고 그 분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집 앞을 지나면서 보니까 비싼 고급 가구를 모두 실어 내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고급 가구를 실어 내가십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술을 팔아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번 돈이 생각날 때마다 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술을 팔아서 산 물건을 모두 처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물건을 사용하면 집안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나 자녀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부터는 깨끗하게 번 돈만 사용하겠습니다.> 회개는 회복입니다.
욥은 회개하고 모든 것이 회복하였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회개입니다.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독실한 성도 한 분이 과수원을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천 그루 정도가 되는 큰 과수원이었습니다. 열매가 막 익어가고 추수를 앞두고 있는 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벌레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과일을 파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었습니다. 약을 치고, 치고 쳐도 날마다 기승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마지막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았습니다. 새떼들이 수 천 마리 날라 오더니 벌레들을 몽땅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헌신에 대한 아름다운 말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말들입니다. 깊은 교훈들입니다.
가장 귀중한 사랑의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그라시안)/국가는 국가에 헌신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재로 세어진다.(프랑스 속담)/기도만 하고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은 위선이다.(미상)/나는 주님에게 헌신할 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이 유감일 따름이다.(N. 헤일)/눈물이 나올 때까지 기도하시오. 땀이 나올 때까지 수고하시오. 열이 오를 때까지 헌신하시오.(칼정)/모든 위대한 사람의 발자취를 보라. 그들이 걸어온 길은 고난의 길이며 자기희생의 길이었다. 자기를 헌신할 줄 아는 사람만이 위대해질 수 있다.(G. E. 레싱)/무엇이든지 나를 위해서는 버리지 않고 오직 타인을 위하여 전심으로 헌신하며 사는 자가 가장 용 감하고 강직한 사람이다.(아사 헨리)/무제한 보화를 소유하는 비결은 그리스도에게 당신 자신을 헌신하는 데 있다.(보언)/비밀스런 마음은 헌신의 성전이다. 성인은 그 곳에서 가장 순수한 헌신의 불꽃을 밝히며, 그 불꽃은 보이지 않게 타오르나 받아들여진다.(한나모어)
사람들에게 헌신하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그대에게 헌신할 것이다. 만약 그대가 한평생을 걸고 사람들에게 헌신한다면, 아무리 교활한 사람일지라도 그 보상을 그대에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에머슨)/세상은 성공한 자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헌신하는 사람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신다(미상)/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이 깊어 질 때까지 늘 헌신과 효도를 생각하며 살아가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할지라도 하늘이 반드시 알 것이다(명심보감)/양초는 남을 밝게 해주며 자신을 헌신하며 허비한다(H. G. 보운)/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의(大義)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벌벌 떨게 하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보다도 강하다.(톨스토이)/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면 하늘나라에 간 즐거움의 절반은 된다. 헌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되지만, 우리 자신에게도 축복의 즐거움이 된다(모렐)/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알지 못한 헌신이 하늘에서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곤 하다(니콜라스 카우신)/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손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손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토마스 왓슨)/한 자루의 양초로 많은 양초에 불을 옮겨 붙이더라도 첫 양초의 빛은 흐려지지 않는다(탈무드)/헌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도 되지만, 우리 자신에게도 축복의 즐거움이 된다.(모렐)
▶어느 목사님은 낚시질을 좋아 하였습니다. 낚시를 좋아 한 다기 보다 차라리 낚시 광이었습니다. 어느 수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낚시질 갔다가 빨리 와서 수요예배를 드리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낚시를 좋아 하는 장로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장로님! 저 건너 저수지에 고기가 잘 잡힌다는 데 같이 낚시 갑시다.> 그러나 장로님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그날따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수요일이니 혼자 가셨다가 빨리 오시라고 말하고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고기가 잘 잡혔습니다. 정신없었습니다. 재미도 있었습니다.
한 편 교인들이 수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와 보니 목사님이 안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았습니다. 빨리 목사님이 가시자고 한 저수지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정신없이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 목사님은 그 교회를 사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이 마지막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그 날로 그 목사님은 그렇게 좋아 하고 그렇게 비싼 낚싯대를 꺾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는 낚시질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좋은 목회자로 목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좋은 간증거리가 되었습니다. 예배 회복이 모든 것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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