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설교 예화(솔로몬의 지혜 외)

본문

설교 예화(솔로몬의 지혜 외)


 


▶옛날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사모하여 그를 방문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하여 꽃을 심은 화분 두개를 가져왔습니다. 같은 꽃인데도 하나는 진짜 꽃이었고 하나는 조화였습니다.

  시바 여왕이 화분들을 멀리 갖다 놓고 솔로몬에게 어느 화분이 진짜 꽃이냐고 물었습니다. 솔로몬은 동산에 나가 벌과 나비를 몇 마리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그 벌과 나비를 놓아주니 벌과 나비들이 그 방안에서 날더니 금방 화분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두개의 화분 중 한쪽 화분에 가서 앉았습니다. 솔로몬은 '저 벌과 나비가 앉은 화분이 진짜 꽃이다.'라고 맞추었습니다.


 


  ▶샤넬 넘버5는 온 세계 여성들이 사랑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향수라고 합니다. 이 향수는 장미꽃잎 45kg을 가지고 향수액 28g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는 1600배 농축하므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장미꽃 45kg은 대단한 양입니다. 이 많은 장미 꽃 잎을 여러 과정을 거쳐 향수로 만듭니다. 향기가 그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과정과 연단을 거쳐서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향수를 내 몸에 한 방울만 바르고 다녀도 하루종일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이제 이 향기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 바쳐진다. 이웃에게 향기를 전한다. 교회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있는데 아름다운 향기를 내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한번도 들어가고 싶지 않는다면 우리 책임이다. 

  고후2:14-15절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우리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납니까?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를 원합니다.


 


  ▶27살에 영국에서 선교하겠다고 중국에 건너온 토마스 선교사, 건너오자마자 그 꽃다운 나이에 아내를 잃었습니다. 아내를 잃어버리고 그 상처가 아직 아물기 전에 그는 소식하나를 들었습니다.

  저 중국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한반도에 사는 조선 민족이라는 민족이 있는데 아직도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고 있으며 복음을 들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국말로 된 성경책을 배에다 싣고는 대동강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그 때는 대원군이 한참 쇄국 정책을 펴고, 카톨릭 신자들을 잡아죽이는 때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소리만 내면 죽이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성경을 전해 주려고 노력을 하다가, 우리 관군들이 나와서 그 배에 불을 질렀습니다.

  드디어 그는 강변으로 끌려 내려와서 칼날에 맞아 순교를 했습니다. 순교 할 때 그 앞에 자기 목을 치는 사람에게 성경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 칼로 친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젊은이의 피가 대동강변에 흘렀기에, 그 피 값 때문에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한강 양화대교 건너편에 양화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비석들이 서 있습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1세기 전에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풍토병이 걸리고 적응하지 못해서 죽은 어린아이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 부인의 무덤이 있습니다. 명대로 살지 못한 젊은 선교사들의 무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들은 무명의 선교사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한국 교회가 있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카터 대통령이 쓴 글을 하나 읽은 일이 있습니다. 'Why not the best?' 그러니까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내용이지요.

  그는 수십 년 전에 자기 교회의 전도집회를 14년 동안 참가를 했답니다. 매년마다 전도집회가 있는데, 매년마다 그 전도집회에 끼어 들어서 전도를 했습니다.

  한 해에 14가정을 꼭 책임지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0년 동안 그 전도집회에 참석했으니까 140가정을 전도한 것입니다. 대단하지요. 그 사람 믿음 좋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요.

  그래 가지고 그 카터 대통령, 나는 10년 동안 140가정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한 일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예수 믿은 사람도 있다. 하는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66년도에 주지사에 출마를 해 가지고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3개월 동안 30만명이 넘는 사람들하고 악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마음에 가책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의 글을 그대로 읽으면 이런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3개월에 30만 명을 만나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14년 동안 겨우 140가정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니 이것 참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선교사로 일하다가 생을 마친 아프리카 선교의 선구자 대영 제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아프리카의 개척자 리빙스턴, 그가 16년간 밀림에서 선교하다 잠시 영국에 귀국했습니다.

  27번째 말라리아에 걸려 사선을 헤매다가 아직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아니한 연약한 몸을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사자에게 물린 한쪽 어깨와 팔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마치 몸에 힘없이 달려 있는 것 같이 보일 정도로 나약한 모습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설교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의 설교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프리카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 그 일을 위해서 나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놓고 즐거워하지 아니한 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서 많은 희생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도무지 갚을 수 없는 하나님께 진 큰 빚의 작은 부분을 갚았을 뿐인데, 이것을 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장차 영광스러운 소망과 복된 상급을 약속 받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희생이 되겠습니까?

  그런 말과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 것은 절대로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이라고 말하십시오. 모든 것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때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결코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우리가 이런 심정을 가지고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이 땅에 와 있던 선교사 언더우드 부인과 민비가 참 가까이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은 자주 만나 대화를 했습니다. 하루는 대화도중 민비가 언더우드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언더우드는 '미국은 땅이 넓어서 4계절이 언제나 공존하는 나라'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민비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때 언더우드는 민비에게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소개한 것입니다.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추운 겨울도 더운 여름도 없고 죽거나 아프거나 병들거나 침략을 받는 일이 없고 눈물과 탄식이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 말을 듣고 민비는 '그런 나라가 다 있느냐, 그렇다면 나도 그 나라에 가보고 싶다.'고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민비가 일주일 후에 시해 당해서 죽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20년만 더 일찍 들어왔더라면 일본침략도 없었을 것이고 억눌려 살아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나라는 더 발전된 문명국가가 되었을 것이고 더 세련된 민족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예수를 알고 난 후에 받은 은혜입니다.


 


  ▶영국은 천주교와 기독교를 합쳐서 1532년 영국 국교를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에게 강압적으로 신봉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항거하여 반대했지만 힘에 밀려 순탄치 못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냥 순응한 것이 아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라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도 핍박의 손길이 가해오자 모험으로 배를 타고 무작정 바다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새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서 찾은 땅이 오늘의 북미대륙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국 땅을 발견한 것이 1620년입니다. 채 400년도 안됩니다. 하와이가 발견된 것이 1779년입니다. 호주 땅이 발견된 것이 1770년입니다.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220년 밖에 안 됩니다. 이 발견은 모두 개척정신에 의한 탐험의 소산입니다. 이 서구인들은 벌써 몸에 익은 이 개척정신에 의해서 우리들이 울안에서 머물러 살아갈 때 세상을 누비고 다니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개척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이 전사 한 것이 1598년입니다. 이순신 장군사후 22년 후에 미국이 발견됩니다. 181년 후에 하와이가 발견됩니다. 172년 후에 호주가 발견됩니다. 참 아까운 일입니다. 그때 이순신 장군이 진해 앞 바다만 돌아다니지 말고 휑하니 넓은 바다로 나갔더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났겠습니까? 만일 거북선의 기관이 고장이라도 나서 망망대해로 표류라도 했더라면 물결에 떠내려가다가 거기에 깃발을 꽂고 호주는 우리 땅, 하와이는 우리 땅 했을 것 아닙니까? 그랬더라면 오늘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을 지닌 나라가 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이 서구인들은 일찍 이 기독교적 사상으로 무장하여 마음과 생각과 의식이 활짝 열린 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미래로 나아가는 삶에 아주 익숙했습니다.


 


  ▶탈무드에 우리 인생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살은 임금으로 모든 사람들이 떠받든다.

   2살은 돼지로 게걸스럽게 먹기만 한다. 

  10살은 염소로 웃거나 장난을 치거나 뛰어 다닌다.

  18살은 말로 자기의 아름다움과 힘을 마음껏 뽐낸다.

  결혼을 하면 당나귀로 가정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터벅터벅 걷는다. 

  중년은 개로 부양 가족을 위하여 구걸을 하면 살아간다.

  노년은 원숭이로 어린아이처럼 되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어떤 화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서서 이 동네, 저 동네, 이 도시, 저 도시를 누비며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큰 부잣집 대문 앞에서 고운 옷을 입은 금방 시집온 것 같은 새색시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미소를 머금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행복하고 귀해 보였는지 '저것이다. 저 모습이 가장 행복한 장면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부잣집 대문 앞의 고운 색시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 색시의 미소가 예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어딘가에 그늘이 보이고 무언가 걱정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해 보이긴 하는데 완벽한 행복의 모습은 아니야'

  그래서 행복한 장면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바람도 없는 고요한 날 호수에서 낚시를 하는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니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보니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긴 하지만 허전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많은 행복한 모습들을 그렸지만 만족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제 집을 떠난 지도 오래 되고 가족들도 보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오시나 아빠가 오시나 기다리던 아내와 아이들이 달려와서 반겨 주었습니다. 집에 오니 아내가 부엌에서 신바람이 나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되어 아내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먼 길을 무사히 다녀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그동안 저와 아이들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내가 기도를 드리는데 그 음성이 얼마나 기쁨으로 꽉 찼는지 남편이 기도하다가 눈을 떴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아하, 바로 이것이구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보이는 최고의 장면이 여기 있구나. 바로 여기가 행복한 곳인데 내가 왜 다른 곳을 헤매고 다녔을까?' 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그것이 세계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식탁에서 온 가족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림'입니다.


 


  ▶영국교회가 뉴질랜드에 헌신적인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몇 년 동안 그 선교사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한번은 성찬주일날 성찬을 베푸는데 야만부족 소속으로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성찬 받으려고 무릎을 꿇어서 성찬의 떡과 잔을 받으려고 하다가 뒤를 힐끗 보더니만 그만 일어나서 얼굴이 확 홍당무같이 되어서 뛰어 나갑니다. 성찬이 다 끝날 때까지 안 들어오더니만 끝날 때쯤 되어서 들어와 버들버들 떨면서 꿇어앉아 성찬의 떡과 잔을 받고 나갔습니다. 예배가 필하고 난 다음 목사님이 그분을 불렀습니다.

  '왜 성찬을 받으려고 하다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가 나중에 부들부들 떨면서 들어와서 성찬을 받았느냐?' 그러니까 그가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내가 성찬을 받으려고 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뒤에 있는 사람이 우리 부족과 원수된 추장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를 죽여서 심장의 피를 뽑아 먹은 사람입니다. 나는 원한에 사무쳐서 내가 살아있는 이상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그 사람도 교회에 나와서 내 뒤에서 성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서 난 밖에 나가서 무기를 가지고 들어와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밖에 뛰어 나가서 무기를 손에 잡는데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데 예수님을 향해서 침을 뱉고 고개를 흔들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향해서 주님이 '주여 저들이 알지 못해서 저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정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르자 그만 자기 가슴속에서 칼이 툭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서 제가 회개하고 돌아와서 다시 성찬을 받았다고 그렇게 말했답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중국에서 선교를 한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여행을 떠나는데 돌아오니까 집에서 일하던 중국 사람이 있는 것을 몽땅 다 훔쳐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찰에 고발을 하고 경찰이 그 사람을 잡았습니다. 그럴 때 이 사람을 놓아주라고 경찰에 부탁을 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당신을 잡은 이유는 당신을 감옥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죄에서 용서받고 영혼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내가 당신을 돌보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물건이 아까워 당신을 잡아낸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영혼이 아까워서 편지를 씁니다. 나는 이미 당신을 용서했으니 당신도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바르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 중국인은 편지를 받고 허드슨 테일러의 용서와 사랑에 감복해서 훔쳐갔던 물건 도로 다 가져오고 변화 받아 그는 나중에 주의 종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전쟁의 폭격으로 황폐해진 산천에도 세월이 지나면 아름다운 꽃들과 숲이 생겨납니다. 산불이 스쳐간 곳, 홍수가 쓰러간 곳, 지진이 허물어뜨려 놓은 곳이라도 자연은 세월을 통해 인간의 횡포를 용서하고 사랑의 손길로 상처 난 곳을 치료하여 아름다운 풀이 나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용서와 사랑과 치유가 없이는 인간과 자연 역시 함께 생존할 수 없습니다. 용서와 사랑과 치유는 자연의 질서요, 인생의 질서인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과 치유가 없이 가혹한 정죄와 심판과 형벌만 있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는 황폐해지고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용서와 사랑과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우리의 정죄와 심판과 죽음을 청산해 버리시고 이제는 주님 앞에서 끝없는 용서와 사랑과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 우리를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이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삶입니다. 부름 받음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아, 야곱아, 모세야, 사무엘아, 사무엘아, 기도하던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를 부르시고, 세리 마태를 주님이 불러 주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주님이 친히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심에는 하나님 스스로 절대 권력자이신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없는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부름 받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의 앞날은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고 그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부름은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입니다. 

  인생은 얼마나 짧습니까? 허무합니까? 구름이 흘러가듯 흘러가면 그만인데, 불러 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 은혜에 감사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마다 큰 기쁨과 감격으로 주를 찬양하게 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