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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환난에서 건저 주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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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추운 겨울, 아기를 안고 길을 가던 한 부인이 길에서 쓰러져 얼어죽게 되었습니다. '나와 내 아기는 이제 죽는구나' 마침 그때 마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살려 주세요. 우리가 죽게 되었어요' 마부가 보니 부인이 얼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말에서 내린 마부가 아기를 빼앗아 안은 후 부인을 밀쳐서 넘어뜨리고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다 죽어가던 부인이 아기를 빼앗기자 아기를 놓아두고 가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마차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부는 아기를 데리고 계속 달렸습니다. 그러나 빨리 달리지 않고 부인이 따라올 만한 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부인은 계속해서 '내 아들을 두고 가라' 하며 마차를 쫓아갔습니다. 20분 정도 지나자 부인의 온 몸에 땀이 막 흘렀습니다. 그제야 마부가 마차를 세우더니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 미안합니다. 처음부터 부인을 마차에 태웠으면 부인은 얼어 죽었을 것입니다. 부인을 살리기 위해 연극을 했으니 이해하십시오' 그래서 부인도 살고 아기도 살았습니다. 마부가 부인에게 20분간 고통을 준 것은 부인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해주시고 내 가정과 일터와 내 인생에 풍랑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실 필요가 있어서, 정신 차리게 할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면 시험에 듭니다. 얼어 죽어가던 여인이 마차를 따라 달렸던 것처럼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저기서 북군이 패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패전의 소식은 흑인 웅변가 더글러스가 연설하고 있는 곳에도 전해졌습니다. 흑인들에게는 낭패의 소식이었습니다. 흑인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북군의 패배는 참으로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더글러스도 울고 많은 흑인들이 울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실망과 낙담으로 침울해 있을 때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까?' 한 노인이 외친 말이었습니다. 노인은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약한 자를 도와주십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고 용기를 회복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갈수록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그 사람은 알수록 좋은 사람 같아!' '그 사람은 갈수록 마음에 들어'라는 소리를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회사 생활을 해도 직원들에게 '그 사람은 갈수록 진국이야!'라는 소리를 듣기를 바랍니다. 

  가정생활에서도 여러분의 배우자가 '나는 당신을 만난 것이 복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그 사람은 우리 교회 보배야'라고 인정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가 '성도님은 제 목회의 아름다운 열매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보시면서 '너는 갈수록 맘에 든다'라고 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런던의 켄더베리 교회 니콜라이 집사님은 열일곱 살에 사찰 집사님이 되어 한평생 교회 청소와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했는지 모릅니다. 교회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치는지 런던 시민들이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님의 종소리에 맞추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충성하면서 기른 그의 두 아들이 다 복을 받아 유명한 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교수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 교수가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 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는 76세까지 종을 치며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보려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니 그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 종을 쳤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은혜를 받고 영국 황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 떠난 날을 런던의 공휴일로 정하여 모든 상점의 문을 닫게 했습니다. 세상에 열일곱 살 때부터 심부름하던 사람이 하나님 앞에 충성하니 그 가족이 귀족처럼 되고 그가 죽은 날이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니콜라이 집사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성실한 자가 충성스러운 자라는 것입니다.


 


  ▶어느 집의 어머니가 잠시 거실에 나왔는데 아들 부부 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기 있잖아' '왜?'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그야 당신이지' '그 다음은?' '우리 아기지' '그럼 세 번째는?' '그야 예쁜 당신을 낳아주신 장모님이지' '그럼 네 번째는?' '우리 집 귀여운 강아지' '다섯 번째는?' '우리 엄마'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밖에 나가면서 메모 지를 냉장고에 붙여 놓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1번, 보아라. 5번 노인정 간다.' 어머니를 강아지보다 못하게 생각하는 아들이 복을 받겠습니까?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효도하십시오. 효도를 결심하십시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효도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효도하는 사람을 귀하게 써주십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이 하루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훌륭한 크리스천이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잘 믿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겸손이다' '그러면 두 번째로는 무엇입니까?' '둘째도 겸손이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사가 마귀가 된 것은 교만 때문이고, 사람이 천사가 될 수 있는 길은 겸손하면 되느니라' 천사가 교만해 가지고 결국 마귀가 되었습니다. 교만하면 아무리 천사라도 마귀가 됩니다. 그러나 겸손하면 사람이라도 천사처럼 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손인형을 아십니까? 인형 속에 사람의 손을 집어넣고 인형극을 하는 인형입니다. 그 인형 속에 사람의 손이 들어가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입니다. 제가 전도사 때 인형극을 좀 했습니다.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교회에 초청을 받고 가서 공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 손이 들어간 인형을 보면서 인형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는지 대단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인형이 못된 짓을 하면 인형을 향해서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착한 인형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인형을 격려하고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성령님은 손 인형 속에 들어간 제 손과 같습니다. 성령님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영적으로 무능력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셔서 영적인 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008년 5월 5일 김명혁 목사님의 '책망과 거룩함이 사라진 한국교회'라는 제목의 설교 문에서 목사님께서 한국교회의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 3가지를 지적하셨다. 그 3가지 중에 세 번째는 '한국교회는 지금 아부 성 발언과 몸짓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목회자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죄와 허물을 지적하는 책망보다는 모든 것을 눈감아주는 아부 성 발언과 몸짓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사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이미 오래 전에 로버트 슐러가 했다. 죄를 지적하면 안 된다고 이미 로버트 슐러가 조언을 했었다. 결국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 조언에 따라 죄에 대한 설교는 가능하면 하지 않게 되었다. 위로와 축복만 강조하게 되었다. 어느 유명한 목회자는 이런 말까지 했다. “교회의 신자들이 줄어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중진들이 주일을 범하고 주일에 다른 곳에 가서 딴 짓을 해도 모른 척하여야 합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신자들이 회개와 헌신의 기본 신앙을 지니지 못해도 출석만 잘 하고 헌금만 잘 하면 신앙이 있는 것처럼 추켜 세워주게 되었다. 결국 목회자는 속이고 신자는 스스로 속아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은혜로운' 목회라고 피차 착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 아무개가 분명히 신앙이 없는데 어느 교회에서는 신앙이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교회는 종교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사교의 장소로 바뀌어지게 된 것이었다. 피차 격려하고 추켜세우는 아부 성 발언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교회는 누구나 가면 기분 좋은 곳으로 바뀌게 되었다. 서글프고 불행한 일이다.]

  김명혁 목사님은 목사들이 교회성장에 혈안이 되어서 죄에 대한 지적과 책망을 하지 않고 성도들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속아서 회개하지 않고 결국은 교회의 거룩함이 상실되었다는 현실을 날카로운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핍박받는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부끄러운 교회가 된 것입니다.

  간디는 '만일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적 삶을 충만하게 산다면 인도에는 힌두교도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살았다면 인도는 복음화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인도가 복음화 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의 토머스 스탠리 교수가 '부의 세습'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미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백만장자들의 성장 과정과 기업의 성장 내용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발표에 따르면 미국 재벌의 80%가 중산층이나 노동자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기업을 물려받거나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 재벌이 된 사람은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스탠리 교수는 이런 결과에 대해서, 자수성가하여 큰 재벌이 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모로부터 물질적인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행실의 거룩함도 거룩한 습관에서 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는 교실 바닥은 마루였습니다. 한번은 대청소 때 제가 마루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몇 십 년 만에 제가 처음 교실 마루 밑에 들어 간 것 같았습니다. 마루 밑에 들어가 보니 거기가 보물 창고였습니다. 별별 것들이 다 들어 있더군요. 수십 자루의 연필과 수십 개의 지우개를 주었습니다. 단추도 엄청나게 많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제일 좋았던 것은 동전을 많이 주어서 그 날 제가 횡재했던 것입니다. 저는 교실 마루 밑에서 수많은 보물을 챙겨서 기분 좋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마루 밑에서 나와서 거울을 보니 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코밑은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저분한 몸을 물로 깨끗이 씻어냈었습니다. 만약 물이 없었다면 저는 그 지저분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물은 참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과 같아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를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요즘 일본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사건으로 온 인류가 핵의 재앙으로 인해서 불안해합니다. 뉴스를 보면 '방사능 피폭'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방사능 피폭이란 방사능에 쏘였다는 말입니다. 방사능을 쏘이게 되면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방사능 피폭은 체내 피폭과 체외 피폭이 있습니다. 체내 피폭은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 혹은 공기를 통해서 체내에 방사능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방사능이 축적되면 신체에 막대한 영향이 나타납니다. 불임, 백혈병, 암, 탈모, 뿐만 아니라 생식 세포가 피폭되면 유전자 이상으로 기형아가 태어나게 됩니다. 체외 피폭은 방사능을 직접 쬐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에 폭발된 일본 원자력 발전소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이 체외 피폭을 받은 것입니다. 체외 피복은 심하면 급성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고 급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방사능 피폭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하지만 기도는 다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면, 방사능과 달리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의 빛이 나옵니다. 그 빛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불신자였지만, 아들은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가는 도중인데 무밭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목이 말라 안 되겠다. 무 한 개 뽑아 먹어야겠다. 너 여기서 누가 오는지 잘 보고 있어라'하고 무밭에 들어가 다리통 만한 무를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쿠, 큰일났구나' 싶어 빨리 밭에서 나와서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가 '이놈아.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 남자가 간이 커야지. 똑똑히 지켜'라고 말하고 다시 무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아까 뽑으려다가 뽑지 못한 그 무를 다시 뽑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도 또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밭에서 급히 나와 사방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이놈아. 누가 본다고 그래? 아무도 없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하늘에 달과 별이 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쓸데없는 소리말고, 똑똑히 지켜'라고 말하며 다시 무밭으로 들어가서 아까 처럼 다리통 만한 그 무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다시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정말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번에도 헐레벌떡 나와서 '자꾸 누가 본다고 그래?'라고 말하자, 아들은 '하나님이 다 내려다보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쯤 되자, 아버지는 더 이상 무를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말은 아라비아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말을 찾아다니던 어떤 사람이 두루 다니면서 훌륭한 말 1백 마리를 찾아내, 우리 안에 가두고 먹을 것을 충분히 주되, 물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시내가 흐르는 전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들은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인은 말들이 목이 말라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한 다음, 우리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말들은 거의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말들이 거의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주인은 풀피리를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1백 마리 중 4 마리만 피리소리를 듣고 멈춰 섰는데, 바로 그 네 마리 말의 조상이 아라비아말이었다고 합니다.

  절제하는 말이 명마로 인정받는 것처럼, 육신적인 욕구를 향해 달려가다가도 성령의 지시가 있으면 즉시 멈춰서는 사람이 진정한 성도로 인정받는 성도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옆을 보니 'POISON'(독약이라는 뜻)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는 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제 곧 창자가 다 녹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의사는 진단을 마치고, 또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껄껄 웃었다. 

  'POISON은 영어로는 '독약'이지만 불어로는 '낚시금지'라는 말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나이아가라 폭포 옆에서 하도 많이 낚시질을 해서 프랑스 사람들 보라고 'POISON'이라고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자 그 사람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독약이 그를 아프게 했다가 치료가 그를 안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아프게 한 것도 안 아프게 하였던 것도 모두 그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은 오른손에 낚싯대를 들고 왼손에는 25센티 짜리 자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낚시꾼은 고기를 잡을 때마다 왼손에 들고 있던 자로 물고기 길이를 재보았습니다. 고기가 자의 길이보다 크면 버리고 작으면 그릇에 담았습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왜 그러느냐' 묻자 낚시꾼은 '우리 집 프라이팬은 지름이 25센티미터입니다. 프라이팬보다 더 큰 것은 볶아먹을 수 없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낚시꾼이 들고 있던 자가 그의 사고를 25센티미터로 제한해 놓고 있었던 거죠. 무언가 대단한 아이디어,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을 때 '이건 내게 맞지 않아, 너무 커'라고 생각하는 소심증 때문에 크고 좋은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지는 않나요? (오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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