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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아놀드 토인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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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아놀드 토인비 외)


 


▶영국의 역사하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1852-1883)는 인류 역사 속에 일어났던 문명은 모두 28개였습니다. 그 중에 18개는 이미 사라져 버렸습니다. 9개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문명 하나만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철저히 유대인들이 문명을 지킨 민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 교육입니다. 

  토라 교육입니다. 19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도 이 나라 저 나라로 유랑하면서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은 성경 토라와 탈무드였습니다. 아버지가 철저히 자녀에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세대 격차가 전혀 없는 민족이 유대민족입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크게 활약하였던 랍비입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이 승리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매파와 비둘기파 둘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로마에 아부하는 매파는 로마와 대항하는 비둘기파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비둘기파였기에 늘 매파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그 때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길을 깊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유력한 장군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 안에 모두 감금당한 상태였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이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아프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벤 자카이는 널리 알려진 랍비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하러 몰려들었습니다. 며칠 뒤 벤 자카이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죽었다는 소문을 냈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관속에 넣은 뒤 성밖의 묘지에 매장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하였습니다. 성안에는 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파에서는 벤 자카이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칼로 찔러 죽었나를 확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반발하였습니다. '그런 짓은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다' 

  유대인들에게는 시체조차 눈으로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자들은 관을 들고 로마군의 포위망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가자 로마 군인들은 관을 칼로 찔러 보아 확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만일 로마 황제가 죽었다면 당신들은 그 때도 칼로 관을 찌를 것인가?' 제자들은 전혀 무장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로마 군인들에게 받아드려졌습니다. 마침내 로마 군인들은 장례를 치르도록 길을 내주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관속에서 나와 로마 사령관에게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면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사령관 앞에 앉았습니다. 그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 표하는 경의를 보냅니다.' 그러자 장군은 황제 폐하를 모독하였다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벤 자카이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장군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됩니다.' 확신에 찬 랍비의 말에 장군은 얼른 입을 막았습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 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장군! 나는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장군이 물을 때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성전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 대가로 야브네 거리만은 파괴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방 한 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그 곳에 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것만은 없애지 않았으면 고맙겠습니다.' 

  야브네는 지중해 안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 곳에서는 대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라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은 반드시 로마에 점령당하고 말 것을 알았습니다. 성전도 파괴될 것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토라 학교만 가지고 있으면 유대 민족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장군은 랍비의 청이 별로 대단치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 정도는 들어 주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둘이 이야기하고 있는 중에 로마에서 파견된 사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 와서 말했습니다. '황제가 돌아 가셨습니다. 원로원에서 장군님을 황제로 선출하였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의 통찰력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작은 학교만은 절대로 없애지 말라' 

  그 날 밤 아키바는 성안으로 들어 와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성을 열어 줄 것입니다. 로마가 우리를 지배할 것입니다. 성전은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토라만은 건드리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토라를 지켜야 합니다. 후에 우리는 이길 것입니다' 

  이튿날 예루살렘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약탈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야브네만은 고스란히 보존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그 학교에 있던 학자들이 유대 민족의 지식과 전통, 신앙, 그리고 유대인의 얼을 지켜나가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유대인들의 생활 규범도 모두 그 학교에서 앞장서 선도해 나갔습니다. 여기에서 미슈나가 나왔습니다. 

  요한나 벤 자카이 랍비는 토라와 토라를 가르치는 학교만 가지면 유대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문에 말씀 상자 메주자를 달아 두고 나갈 때 들어 올 때 입을 맞춥니다. 이마에 말씀상자 메주자를 달고 다닙니다. 팔에는 테피린을 맵니다. 말씀 중심으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났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 시체를 미국 함대를 보내 그의 시체를 미국으로 가져오던 날 뉴욕시가 생긴 이래에 최대의 인파가 모였습니다.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습니다. 예포가 울려 퍼졌습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누구 시신이었을 가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이 노래를 작사한 죤 H.페인이었습니다. 이 노래가 전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내 쉴 곳은 내 집뿐이라는 노래로 온 세계를 감동시킨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가정입니다.


 


  ▶유대인들은 새해 첫날이 되면 무엇보다도 회개와 참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해 되면 먼저 10일간 회개와 참회를 합니다. 그 10일 동안 회당에 모여 예배하고 하루 종일 음식과 고기를 금하고 목욕이나 성적 행위를 금하고 요나서를 읽으며 회개와 참회를 하는데 2008년 초에 회개의 예배에 이스라엘 전 국민의 63%가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자로 한해를 시작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이 유대인의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의 삶입니다. 1973년 10월 6일 대속죄 일에는 모든 국민들과 군인들이 금식하며 속죄 일을 보내는데 그 날 이집트와 시리아가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습니다. 

  시나이 사막과 골란고원을 넘어 이스라엘로 공격해 와서 처음 2일 동안은 승리하고 기선을 잡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갑자기 허를 찔렸습니다. 무장해제하고 하나님께 대속죄의 회개의 시간을 보내는 기간에 당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대반격을 했는데 1967년 6월 전쟁 때 뺏은 땅보다 훨씬 더 넓은 땅을 뺏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강한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는 것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덴마크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느 나라의 왕자가 사냥을 나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골길에서 한 처녀를 만났습니다. 한 눈에 반하여 버렸습니다. 궁으로 돌아왔는데 온통 그 처녀 생각뿐이었습니다. 보고 싶어서 미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보고 싶어져서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처녀를 궁으로 데려와 배필로 삼아야겠다는 결심하였습니다. 어떻게 데려올 것인가를 궁리하다가는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첫째 방법은 왕자 자신의 권위로 다가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왕자의 정장을 하고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가가 청혼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서는 그 처녀의 진정한 사랑을 얻기에는 합당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위압감을 느낄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방법을 생각하였습니다. 처녀를 데려다가 왕궁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하를 보내어 처녀를 왕궁으로 데려다가 왕궁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 주고는 청혼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처녀가 사랑의 마음이 없어도 왕궁의 영광을 보고 결혼에 응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방법을 생각하였습니다. 왕자도, 왕궁도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기엔 합당치 않을 것이니 왕자 자신이 시골 목동의 모습을 하고는 그 처녀에게로 다가가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여 왕궁으로 데려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왕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골 처녀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왕궁은 하늘나라입니다. 왕자 예수님은 시골 처녀인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세 번째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직접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 왔다면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천국을 구경시켜 준 후 믿으라면 안 믿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순수한 사랑을 하여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보이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진정한 변화 산이 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왜 해야 하는가? 먼저 네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①하나님 입장입니다. 고전1:21절에 의하면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였도다'

  자녀는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성도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전도입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신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먹고 아들을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서 죽이신 그 사실을 세상에 전하는 일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②전도자의 입장입니다. 전도는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끄는 일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이끈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단12:2-3)이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복된 길을 안내해 주는 일입니다. 어디서 맛있는 음식만 먹어도 누군가를 데리고 가고 싶어집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내가 먼저 복을 받는 일이고 또 그 복을 나누고 유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③전도대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도는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롬10:14)입니다.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행8:30절을 보면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빌립이 찾아가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느냐고 물이니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알겠는가'하고 대답하였습니다. 

  ④전도대상자 편에서 보면 전하는 일은 복음을 듣게 해 주는 기회입니다. 막16:16절을 보면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전도는 가장 선한 사업입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외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가장 긍휼이 여기는 일이 전도행위입니다. 누군가는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때 알려주는 사람이나 알게 되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 주일의 유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 기도를 선포하고 경건한 이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또 한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이렇게 제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종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금식 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인 것입니다./고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손길, 옥한흠


 


  ▶겸손의 일상 생활화 

  우리의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심정은 사람과의 관계나 서로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이웃에게 나타내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이란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위에서 본 모든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 겸손을 배우자.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기를 힘쓴다. 

  즉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여 서로 종이 되며 각각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순복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의 생활이다. 지혜에 있어서나 재능에 있어서나, 혹은 받은 바 신령한 은혜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사람을 낫게 여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마음속의 참 겸손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데 자신은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완전히 죽일 때까지 나타나는 것이 겸손이다. 이러한 사람은 오직 "오, 주여 당신을 찾으려고 나는 나 자신을 버렸사오니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케 마옵소서"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고서야 비로소 자기 중심의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낮추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고 , 또 자기를 위해서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하나님의 종으로 또는 모든 사람의 종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신실한 종은 주인보다 더 지혜로울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실한 종이라면 역시 종으로서 마땅한 정신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가장 연약하고 가장 볼 것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오히려 우러러보며 그들을 존경하고 섬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던 그리스도의 정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작은 자 즉 다시 말하면, 피차의 종이 되는 것을 만족케 한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란 없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섬김과 존경받음을 볼 때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른 사람은 칭찬을 받고 자기는 오히려 천대받고 무시당해도 참을 수 있다. 

  이는 그가 마치 바울 사도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그 정신을 배웠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사람은 마치 예수님께서 자기의 기쁨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존귀를 구하지 않으신 그 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동료들의 실수와 죄를 보고 날카로운 말로 책망하고픈 유혹을 받을 때에도 겸손한 사람은 "서로 참으며 서로 용서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해 주신 것같이 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에 임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주 예수를 옷 입어야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앤드류 머레이


 


  ▶어느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작품의 소재를 찾던 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에 대한 고민을 하던 끝에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맨 먼저 그가 만난 사람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뭡니까?' 그녀는 대답합니다. '사랑이죠. 사랑은 눈물도 달콤하게 만드니까요'

  이번에는 목사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그야 당연히 믿음이죠. 간절한 믿음이야말로 세상에서 비길 것이 없죠' 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가는 군인을 찾아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뭐죠?' '그것은 평화가 아니겠어요. 평화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전쟁은 가장 추한 것이죠'

  화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사랑 믿음 평화가 들어가도록 하나로 만들면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될 거야 하며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3가지를 어떻게 모아서 그리지? 또 다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에 서려있는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아내의 젖은 손길에서 남편을 향한 사랑과 낡은 침대 속에 평화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가난하지만 자신의 행복하고 평화스런 가정 안에 이 모든 것이 들어있음을 보고 작품을 완성시켰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와 같은 가정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그는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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