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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나침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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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


 


 


▶어느 대학교 졸업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노교수 한 분이 사회로 나가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자네들은 공부를 마치고 위험한 바다에 배를 띄워 항해를 떠난다는 것을 알겠나?>


  이 말을 듣자 학생들은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뒤에 학생 하나가 그 교수님 가까이로 가서 말했습니다.


  <위험한 바다를 향해서 출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수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주머니에서 성경책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교수님. 위험한 바다로 막연하게 떠나는 것 같지만 나침판이 여기에 있습니다.>




  ▶TV에서 도자기 장인이 토기 만드는 현장을 보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성껏 만든 후에 하나, 하나 점검하며 망치로 토기를 깨뜨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명한 장인이라 한 개가 수백만 원짜리인 데 아낌없이 과감하게 파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이 아까운 것을 왜 깨뜨립니까?>


  장인은 두 가지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한 가지는 내 마음에 안 드는 토기가 돌아다니는 것이 싫습니다. 다른 이유는 더 좋은 토기를 만들려면 안 좋은 토기를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도 마친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이 싫으셨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토기 사람을 만들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토기장이 하나님은 안 좋은 토기 사람을 파상하십니다.




  ▶주일 오후 늘 전도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기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장대처럼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날 그 남자는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하러 나가지 않으세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기에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단다. 그리고 오늘은 아빠도 몹시 피곤하다.>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비오는 날은 하나님도 쉬시면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시나요? 내가 아빠 대신 나가지요.>


  그리고 아들은 전도지를 한 묶음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 집 저 집 우산을 쓰고 다니면서 전도지를 돌렸습니다. 마지막 한 장이 남았습니다.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중년 여자가 나왔습니다. 전도지를 받는 데 얼굴이 침통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하라고 한 마디 하면서 전도지를 주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 후 얼마가 지났습니다. 간증시간에 한 여인이 앞으로 나와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과 아픔을 견디지 못 하고 자살을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허전하여 갈등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주일 저녁이었습니다. 목을 매고 자살하려고 하는 데 노크소리가 들렸습니다. 끈을 내려놓고 문을 열고 보니 작은 천사가 비를 맞으며 서있었습니다. 그 천사는 내게 전도지 한 장을 주었습니다. 죽기 전에 읽어 보려고 하는 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엿장수가 가위를 일분에 몇 번 소리를 낼 가요?> 대답을 우리 모두는 잘 압니다. <엿장수 마음대로.>


  하나님이 파상한 토기 흙덩어리로 무슨 토기를 만드실까요? 그 대답을 역시 우리는 다 압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나님은 절대 주권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이 땅에 태어난 것 아닙니다. 내가 나의 주인도 아닙니다. 내가 죽고 싶다고 죽는 것도 아닙니다. 전적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떵떵거리고 살던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


  솔로몬은 또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127;1)


  토기장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열면 닫을 자가 없고 그 분이 닫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그 분이 서면 가게 할 자가 없고, 그 분이 가면 서게 할 자가 없습니다.


  온 세상은 그 분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라 국화꽃을 잘 기르고 있었습니다. 국전에 출품할 작품입니다. 정성을 드려서 잘 만들며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국전에서 금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온실에 가서 보니 꽃 몇 송이가 잘려져 있었습니다. 종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꽃을 잘라 갔어?> 종이 말했습니다. <주인님이 어디에 쓸 데가 있다고 몇 송이를 잘라 가셨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이가 잘라 갔는데 누가 뭐래겠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면 누가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주권자입니다.




  ▶어떤 청년이 호두나무 아래서 누워있었습니다. 호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까먹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이 호도 하나를 수박 만하게 만드셨다면 한 개만 먹어도 배부를 텐데..>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호도가 코 위에 떨어져 잠이  깼습니다.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호도를 호두 만하게 만드신 것을 감사합니다. 수박 만하였다면 나는 골이 깨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토기장이입니다.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있었습니다. 그 인형은 자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여기 저기 다니며 물었습니다.


  <내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아무도 가르쳐 주지 못 하였습니다. 소금 인형이 강가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데 강이 말했습니다.


  <네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면 내게 들어 와 봐라.> 소금 인형이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점점 녹아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소금 인형이 말했습니다.


  <아! 알았다. 내 본질은 소금이구나!>


  우리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흙입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토기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입니다.




  ▶세상에는 두 문화의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 중심의 문화입니다. 이 문화가 나중에는 세속 문화로 발전해서 마침내는 물질문화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 중심 문화입니다. 이 문화가 경건문화로 발전해서 나중에 정신문화로 발전했습니다. 이 두 문화는 창세기 때부터 계속해서 흐르고 있습니다. 이 두 문화가 흐르면서 때로는 서로 대치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갈등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보면 세속 문화가 이 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이고 인간중심적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쪽에는 극히 정신적입니다. 거기에 경건이 있고 신앙이 있고 신 중심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이 두 문화가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속에도 한쪽은 세속 문화를 따르려고 하는 속성이 들어 있고 또 한편에서는 정신문화를 따르려고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의 나의 모습은 경건하고 신앙적인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떤 때는 나 자신이 극히 세속적일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에 이러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시대 미국의 국민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구인가?" 1위는 대통령도 아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도 아니었습니다. 1위를 차지한 인물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렇게 적고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역대의 어느 대통령보다도 아니 몇 사람의 대통령을 합해 놓은 것보다도 더 지대한 영향을 미국 국민들에게 주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가정이 파탄에서 회복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탈선 현장에서 돌이킬 수 있었다. 그러니 그의 영향력을 누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수많은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온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청년 시절 시카고의 휘튼대학을 다닐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학 교수들 가운데, 자기들의 지성만 믿고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저하지 않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 밑에서 교육을 받다보니, 아무래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도 예전처럼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어떤 결론이라도 내려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성경을 들고서 휘튼대학 구내의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러 교수님들 밑에서 여러 학문을 접하다 보니까, 제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성경을 읽어도 예전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그는 조용한 달빛 아래서 하나님이 그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는 성경 말씀을 신뢰하라. 그리고 성경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라."


  그 순간 불현듯이 그에게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크다 한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어찌 능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내 머리로 성경 말씀을 의심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내 생각, 내 경험, 내 논리, 내 판단까지도 성경 말씀에 의해서 의심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성경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지 성경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겠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성경 말씀에만 절대적인 권위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설교할 때마다 늘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The Bible Says,’ 곧 ‘성경은 말씀하시기를’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이성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시기를’입니다. 그는 성경 말씀에만 절대적인 권위를 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바르게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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