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주일 이야기
본문
어린이주일 이야기
어린이 주일 (The Children's Sunday)
어린이 주일은
'꽃주일'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1870년 미국의 한 조합 교회에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꾳,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들의 가능성과 꿈을 존중하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실시되었습니다.
즉 1856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레오날드 목사가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킨 이래
1868년 미국 감리교회에서 이날을 기념일로 정했으며,
1883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이날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것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6월 둘째주를 어린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6월 둘째주가
어린이 주일로 결정된 것은,
일년 중 꽃이 만발한 가장 아름다운 이 시기가
푸르고 아름다운 어린이들의
이미지와 가장 잘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창기에는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 오다가
1956년 5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는 1946년부터 지켜오던
5월 5일 어린이 날과 근접해 있을 뿐 아니라
어린이 주일의 근본 취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주일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절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절기로 보편화되게 된 것은
근세에 들어오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이가
어떻게 교육되느냐는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물론 교회에서 조차도 이들은
아무 대책없이 방치되고 있었기에,
몇몇 뜻있는 목회자들은
어린이들을 위한 교회의 특별한 봉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미국 최초의 어린이 주일을 제정한
유니버살리스트(Universalist)제일 교회의
레오날드(G. H Leonald)목사 역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레오날드 목사는
1856년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시키고
어른들에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에서,
6월 둘째주를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어린이 주일로 정하고
그날 어린이 주일 행사를 거행했습니다.
레오날드 목사의
어린이 주일 시행이후 교회들은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그 결과 1868년에는
미국 감리교에서 6월 둘째주를
어린이 주일로 정식으로 승인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결정은
교단을 달리하는 다른 교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883년 미국의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도 '어린이 주일'안을
결의안으로 통과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린이 주일은 교회 절기의
일부분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음은 물론
어린이라는 호칭조차 없던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우리에게 선행되어야 했던 것은
어린이 주일의 제정보다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한 바른 인식이었습니다.
어러한 때에
방정환, 마해송, 윤극영등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린이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색동회는 1923년 5월 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 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였고
그러면서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편 초창기 5월 1일이었던 어린이 날이
1927년 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
오늘날과 같은 5월 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도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회들도
초창기에는 미국에서 처음 제정된
6월 둘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켜오다가
1956년부터 5월 첫째주를 어린이 주일로 변경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다 활발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01)
사무엘 크로우더 목사
나이지리아의 노예시장에서 한 어린 아이가 담뱃잎 한 포대와 교환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도 노예로 팔려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노예 상인들은 어린 아이를 노예선에 태워 미국으로 향합니다.
미국으로 가던 중 불법노예선임을 알게 된 영국 군함에 의해 나포되었습니다. 군함의 군목은 수백 명의 노예들 속에서 총명하게 보이는 그 어린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양자로 삼아 철저한 신앙훈련과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나이지리아 교회 최초의 감독 취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취임하는 감독은 세계적 성서학자이며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 크로우더(Samuel crowther)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30년전 노예선에서 군목에게 양자로 선택을 받았던 그 어린 아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한 어린아이가 훌륭한 양부모를 만나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 어린 아이의 인생이 어른들이 어떻게 대하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회학자가 말하기를 지나간 19세기가 여성을 발견한 세기라면,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요, 21세기는 노인을 발견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발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그전까지는 어린이가 하나의 인간이나, 인격으로 간주되기보다는 부모나 사회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20년대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로 있을 때 어린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방정환(方定煥) 선생은 이를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민족의 미래는 다음세대를 귀히 여기는데 있다고 확신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했을 때 존대 말 쓰기 운동을 벌렸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어린이 즉 ‘어리신 이’ 라는 말을 사용했고 어린이도 하나의 인격체임을 선언했습니다. 1921년의 일이었으며, 1922년 5월1일 처음으로 어린이 날 제정을 제안하고, 1923년에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게 됩니다. 그해 5월1일 아동문화운동단체 색동회를 창설하게 되는 데 이것이 어린이날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02)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지금은 누구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어린이'란 단어.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에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미래의 꿈나무인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고
티 없이 밝게 자라길 바랐던 소파 방정환 선생에 의해
90여 년 전 지어진 단어입니다.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은 나라 잃은 설움에 기쁨까지 함께 잃어갔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다 보니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며
형편이 어려울수록 아이들이 잘 자라야
나라의 장래가 밝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늙은이', '젊은이'와 같이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접하는 뜻이 담긴
'어린이'라는 낱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방정환 선생의 아이들 사랑은
단 하루라도 자신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어른들에게 대접받으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기쁨 가득한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한 방정환 선생의 노력으로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이 제정되었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이날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12만 부를 배포했습니다.
그는 전단에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십시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하십시오.
어린이를 절대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등의 당부를 했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세상을 떠나던 날에도
아이들의 오늘과 미래를 염려했다고 합니다.
"이 나라 어린이를 위하여 좀 더 힘쓰지 못하고 가니 미안하다."
방정환 선생의 이러한 노력 덕에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하고,
동시에 「어린이헌장」을 선포하였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지키고 일으키는 건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밝아야 세상의 장래도 밝고,
아이들을 귀히 여겨야 우리가 사는 삶도 귀해지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미래의 거울이라 했습니다.
오늘 무심코 한 행동이 있었나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04)
어린아이들의 천국
1864년 링컨의 집무실로 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에는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며
노예들을 해방시켜달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정의감과 사랑이 가득한 지식인이 썼을 것 같은 이 편지는
사실 한 어린이가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어린이 노예들을 보고
비통함을 느껴 편지로 탄원한 것입니다.
당시의 지식 있고 연륜이 있는 수많은 어른들도
노예제도를 이용한 인권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때에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어린이가 정의로움이 넘치는 행동을 보여준 것입니다.
링컨은 이 편지를 보고 크게 기뻐했으며 다음과 같이 답장을 썼습니다.
“어린이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비록 나는 그럴 힘이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그럴 힘이 있으며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들도 기억할 것으로 믿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이 정의와 너그러움으로 가득한 것을 보고
저는 매우 큰 기쁨을 느낍니다.”
링컨이 다시 보낸 이 탄원서에는 195명의 어린이가 서명을 했으며
이것은 최근 소더비 경매에 나와 340만 달러에 팔려
자필로는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기에
우린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해 주십시오.
주님!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걸 느끼게 하소서!
오늘 만나는 어린이들을 사랑으로 대해 주십시오.
(05)
세살을 넘기기 힘든 아이
이 소년의 초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는 비극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빈궁한 가정환경과 병약한 몸으로 수업이 어려움’
소년의 아버지는 고무공장을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아 도피 중이었다. 어머니는 작은 채소가게를 운영하며 네 아들을 키웠다. 소년은 집안을 돕기 위해 거리에서 성냥을 팔았다. 소년은 갓 태어날 때부터 몸이 너무 약해 젖을 빨 힘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세살을 넘기기 힘든 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장점이 있었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이 그것이었다. 그는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세계적인 대부호가 됐다. 이 소년의 이름은 ‘노벨평화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의 가시채를 갖고 있다. 또한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가 한두 가지는 반드시 있다. 다만 그것을 계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06)
그저 단순하게
사람들은 사실 때문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때문에 감동합니다. 아무리 사실일지라도 지성이 너무 강하면 부드러움을 제한합니다. 사람들은 논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동 때문에 이끌려집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딱 맞아도 그 안에 따뜻함이 없으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에 감탄을 하기는 하지만 쉽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말하고, 쉽게 말하고, 정직하게 말하세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싶으면 더는 말을 덧붙일 수 없을 만큼 단순한 한 문장으로 딱 끝내세요. 끝! ⓒ최용우
(()7)
말틴루터 어린이
중세 때 이야기. 한 성당에서 찬양대원들이 열심히 성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 한 어린이가 지휘자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니?” 지휘자가 물었다. “저 찬양대원이 되고 싶어서요.” 소년의 대답에 지휘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우리 찬양대는 어른만 하게 되어 있어. 그래서 어린이는 받아들일 수 없단다. 너는 안되겠다. 네가 찬양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자 이 당돌한 꼬마는 맑은 눈빛으로 지휘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휘자님,그러나 주님께서 저를 쓰시겠다고 하시는데요.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왔어요.” 주님께서 쓰신다고 했다는 고백을 들은 지휘자는 감동을 받고 그 어린이를 찬양대원으로 발탁한다. 그 소년은 믿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찬양도 탁월하게 잘해 눈길을 끌었다. 이 아이가 자라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창작한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다.
(08)
어머니의 자녀교육
어느 가게에서 아이가 장난감 하나를 훔쳐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것을 본 어머니가 아이를 꼭 안아주다가 점원에게로 다가갔다. “제 아이가 장난감이 매우 갖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용서해주세요.” 점원은 어머니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훔친 장난감을 사서 아이에게 선물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가게의 한 공간으로 데려갔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단다.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셔야 비로소 완전한 용서가 되는 거란다.” 어머니와 자녀가 가게의 한 귀퉁이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드렸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부모인가. 자녀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자녀는 어머니의 교육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09)
어린이들에게 모자를 벗고 절을 하였다
페스탈로찌는 어린이들에게 모자를 벗고 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마가복음 10장 13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안수하신 어린이 가운데 성장하여 후에 안디옥 교회 주교가 된 이그나티우스(Ignatius)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미래의 역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신학대학 학장님으로 계시는 정대위 박사님이 있습니다. 숭실중학교를 평양에서 졸업하고 졸업식을 마친 후 몇 친구들이 중국집에 모여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서로들 위대한 정치가, 목사, 교사가 되리라는 미래의 포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 마침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 식사하러 오셨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더니 그들에게 장차 미래의 싹들이 여기에 다 모였다며 그대로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더니 키가 조그마한 정대위라고 하는 학생에게 와서는 손을 꼭 잡더니 “정목사님! 앞으로 훌륭한 목사님이 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중학교를 다닐 때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나는 한국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훌륭한 목사라고 불러주었으니 훌륭한 목사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나는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노력해서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로서 건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한국신학대학 학장이요 교회를 섬기면서 큰 일을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들을 미래의 역사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10)
후버 어린이
미국 아이오와주의 작은 마을 웨스트 브로치. 한 교회학교 교사가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네 명의 소년을 만났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