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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모음(성탄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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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모음(성탄절 외)

 


 


▶어떤 책을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1947년 봄, 이스라엘의 어느 유목민이 들에 나가서 천막을 치다가 동굴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동굴에 돌을 던져 보니까 동굴 속에 항아리가 10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항아리 속에는 글씨가 쓰여진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것을 집에 가지고 와서 기둥에다 걸어 놓고서는 오고, 가면서 여러 번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리 쳐다보고 생각을 해보아도 도무지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을 가위로 잘라서 허리띠를 만들까, 신발 끈을 만들까, 아니면 나귀 채찍을 만들까,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고학자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기둥에 매어 있는 그 두루마리를 보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권위가 있는 성경 사본인 사해 사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성경의 원문이 쓰여 있는 사본입니다.

  그런데도 이 유목민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모르니까 그것을 기둥에다 걸어 놓고는 생각하기를 이것을 가위로 잘라서 허리띠를 만들까, 신발 끈을 만들까 하고 우습지도 않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지하면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값을 모르면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다음 하나님 앞에 서서 '나는 몰랐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하고 변명을 해도 안 통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는 결국 사람을 망하게 하고 맙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날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본 회퍼'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값비싼 대가를 치러 구원받은 값비싼 존재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성탄절과 함께 알아야 할 교훈입니다.


 


  ▶트럭을 운전하시는 기사분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이 분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깊은 산길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산길은 매우 험하고도 꼬불꼬불했습니다.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천천히 산기슭의 가파른 길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극히 좁디좁은 길목을 만났습니다. 산비탈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습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 큰 트럭을 몰고서 저 좁은 길목을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그는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큼지막한 팻말이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팻말에는 '당신도 이 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수많은 기사들이 이곳을 안전하게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그의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운전을 해서 결국 좁은 길목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 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눈앞에 언제나 평탄한 길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가파른 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아주 좁디좁은 길목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엄청난 시련이 임했는가?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전10: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시험을 당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이겨낸 시험입니다. 다른 사람이 감당한 시험을 왜 우리는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운 시험에 처했습니까? 겁먹지 마십시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낮은 대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을 듣다 보면 그렇게 활달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이 분이 어느 고등학교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의 간증설교를 듣기 위해서 학생들이 강당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도착해서 강단 위에 오르시다가 그만 놓여있는 마이크에 머리를 세차게 부딪혔습니다. 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황해야 할 당사자인 안요한 목사님은 마이크를 손에 잡으시더니 그 특유의 맑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아침에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그만 안경을 잊어먹고 빼놓고 왔습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마이크를 보지 못하고 실례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학생들 모두가 "와!"하면서 박장대소했습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시는 목사님이 안경을 빼먹고 와서 마이크를 보지 못해서 부딪혔다고 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당하는 시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유 있는 유머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한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맹인인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산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컬러는 삼중고를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듣지도 못했습니다.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평생을 다 살고 난 뒤에 숨을 거둘 때 마지막으로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강도가 총을 들고서 말했습니다. "손들어! 그리고 있는 돈 모두 다 내놔!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내놓지 않으면 총으로 쏴 죽일 거야!"

  그는 강도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몽땅 끄집어내어 그것을 보자기에 싸서 자기의 허리에 꽉 묵었습니다. 그 뒤 눈을 지그시 감더니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쏠 테면 한 번 쏴보시오!"

  자기가 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은 빼앗기지 않다는 배짱입니다. 과연 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미련한 사람입니까? 여러분, 돈이 소중합니까? 목숨이 소중합니까? 가치관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사실 그 사람만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미련할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찮은 것을 가지고 가실 때도 있습니다. 영적인 것이 귀중하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런 것들은 하나도 귀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을 쓴 이규태씨의 칼럼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고쳐야 할 의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쿼터리즘(Quarterism)'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15분 주의입니다. 영어의 '쿼터'라는 말은 1/4을 뜻합니다. 한 시간의 1/4은 곧 15분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15분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문을 읽어도 15분 이상을 보지 못합니다. 사설도 좀 꼼꼼히 읽고 해야 할텐데 그저 후닥닥 15분만에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또 식사를 할 때도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아니고, 15분만에 끝내버립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15분을 견디지 못합니다. 초조하고 불안해 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그보다 더 심합니다. 5분을 못 견딘다고 합니다. 그 분이 지적을 했습니다. 유원지에서 노는 어린 아이들은 한 놀이기구에 앉아서 5분 이상을 보내지 못합니다. 5분만 지나면 초조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놀이기구에서 내려와 다른 기구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느긋하게 사는 훈련을 해야될 줄 압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스개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일본 사람과 미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 상금을 걸고서 인내심 시합을 했습니다. '누가 더 오래 견딜 것인가?' 그것을 보기 위해서 세 사람을 밀폐된 돼지우리 속에 돼지와 함께 넣었습니다. 오래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제일 먼저 일본 사람이 뛰어나왔습니다.

  "더러워서 도저히 안되겠네! 질식하겠어!" 또 한참 있더니 미국 사람이 뛰어나왔습니다.

  "더 견디다가는 실신해 버리겠네! 더 못 견디겠어." 한참 기다렸습니다. 중국 사람이 안나오는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돼지우리 문을 열고 쳐가 보았더니 중국 사람이 돼지를 베개 삼아서 함께 자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기다렸습니다. 나중에 결국은 뛰어나왔는데 누가 뛰어나왔습니까? 돼지가 뛰어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사람의 만만디 기질입니다. 그들의 저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큰 실패를 겪고 말았습니다. 그는 낙심을 했습니다. 절망 가운데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번에 그만 사업에 실패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살아갈 용기조차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목사님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에게 종이를 한 장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이의 앞면에는 선생님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써보시고, 종이의 뒷면에는 아직도 선생님에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써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대뜸 종이의 앞면에 '사업'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연필을 놓고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모습을 보고서 물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그것밖에 없습니까?" 그는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종이의 뒷면에 아직도 선생님에게 남아있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써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도 그는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왜 안 쓰십니까?" 그는 쑥스러운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뭐 남은 것이 별로 있어야지요."

  목사님은 그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 보십시오. 첫째 질문입니다. 선생님에게 부인이 있으십니까? 없으십니까?" "예,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내는 선생님이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선생님에게 바가지나 긁으면서 선생님을 못살게 구십니까?" "아니요. 우리 아내는 정말 착합니다. 늘 제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 주지요. 그러니 제가 아내의 얼굴을 볼 면목이 더 없어집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아내'라고 적으십시오. 아내만큼 선생님에게 큰 힘이 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목사님은 둘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에게 자녀는 몇이나 됩니까?" "예,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속만 썩입니까?" "아니요. 우리 아이들도 착합니다. 말도 잘 듣고 열심히 공부도 잘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 '아들 둘, 딸 하나'라고 적으세요. 그들도 선생님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목사님은 셋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예, 건강이야 좋지요."

"그러면 거기에 '건강'도 적으세요. 건강도 귀중한 자산이지 않습니까?"

  목사님은 넷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이 이번에 사업에서 실패하셨지만 그 실패를 통해서 오히려 얻은 교훈은 없나요?" "왜 없겠습니까? 많은 것을 깨달았지요." "그러면 그것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들도 참으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나는 대로 사업의 실패를 통해서 얻게 된 교훈들을 몇 가지 적었습니다. 목사님은 마지막 다섯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믿지요.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제일 먼저 목사님을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이라고 적으세요."

  목사님은 종이를 받고 나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보기에 낙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한 가지이지만 아직도 선생님에게 남아있는 것은 이렇게 많지 않습니까? 또 잃은 것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귀중한 것도 많이 얻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는군요. 선생님이 하나님을 잃지 않는 한 하나님도 선생님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선생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는 그 말을 통해서 큰 위로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1871년 미국 시카고에 대화재가 났습니다. 그 때 우리가 잘 아는 시카고의 유명한 부흥 사였던 D. L. Moody가 섬기는 교회도 화재로 다 타버렸습니다. 무디의 집도 타버렸습니다. 재산이 불과 함께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문기자가 짓궂게도 무디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몽땅 다 타버렸네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때 무디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은 타지 아니하셨습니다. 내게 희망도 남아있고요."

  과연 그의 믿음대로 바로 그 자리에는 얼마가지 않아서 더 크고 더 아름다운 새로운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그는 또 복음의 활동도 이전보다도 더욱더 왕성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잃은 것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습니다. 무엇을 잃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을 주셨습니다. 돈을 잃으셨습니까? 그것 때문에 믿음을 얻지 않으셨습니까? 건강을 잃으셨습니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셨습니까? 또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시험 속에 있는 유익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시험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연로하신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대학교수였습니다. 이제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책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귀중한 책들을 모두 남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의 책상 위에는 큰 성경책 한 권과 또 그것을 볼 수 있는 두꺼운 돋보기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 앞에 가야될지 모르는 이 시점에 그 많은 책들을 남겨 두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래서 남들에게 다 주었지요. 나는 요즘 신문도 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아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괜히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지요. 내게는 오직 성경책만 있으면 됩니다. 내가 이 나이에 누구의 말이 필요하고 누구의 위로가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만 내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틈나는 대로 계속해서 성경만 읽으면서 하나님 나라에 갈 시간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 가운데 '알라딘의 요술램프'이야기가 있습니다. 알라딘이 램프를 문지릅니다. 그러면 '펑!'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 속에서 마왕이 나옵니다. 그리고 알라딘에게 묻습니다.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소원이 무엇입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알라딘이 자기의 소원을 이야기하면 마왕은 마법을 베풀어서 알라딘의 소원을 다 들어줍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마법과 같은 것입니까? 우리의 기도가 그런 것입니까? 하나님을 마왕처럼 생각하고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간구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면 내가 종입니다. 믿음은 주인 되신 하나님이 무엇을 명하시든지 간에 종된 나는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주인 되신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기쁨으로 순종하면서 나를 전적으로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꺾어서라도 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기도입니까? 아닙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종입니다. 

  "오, 하나님! 내가 만나는 시험 속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줄 압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내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이것이 기도입니다.


 


  ▶미국에서 한 때 베스트 셀러로 인기를 끈 책이 있습니다. <회복>이란 책입니다.

'챨스 콜슨'이 쓴 책입니다. 콜슨은 교도소에서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쓴 책입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1)자학 죄수 (2)포기 죄수 (3)회복 죄수

  자학하는 죄수는 절망감속에서 자해합니다. 자살을 기도합니다. 최악의 죄수입니다. 포기 죄수가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인정하고 맥없이 앉아 있습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회복 죄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감옥에서 갇혀 있지만 감옥에서 나가게 되면 새로운 인생을 멋지게 살 계획을 세우고 그 날을 기다리며 당당하며 살아가는 죄수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면서 살아가는 죄수입니다.

비록 지금은 자유를 상실하였고, 가족을 상실하였습니다. 일을 상실하였고, 고향을 상실하였습니다. 친구를 상실하였고, 모두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나 회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죄수입니다. 다 잃어 버렸어도 꿈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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