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容恕)에 관한 예화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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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에 관한 예화 모음
성경구절 : 잠언 19:11. 마18:35,
용서의 낱말뜻
1. 히브리어
(1) 하말 - 아끼다, 불쌍히 여기다, 긍휼히 여기다.
(2) 카파르 - 덮다, 속죄하다, 용서하다, 달래다, 지워버리다, 취소하다, 자비롭다.
(3) 카파르 - 관용하다, 용서하다.
2. 헬라어
(1) 압히에미 - 면제하다, 용서하다, 취소하다.
3. 한자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는 것.
용서에 대한 성구
1. 무엇을 용서하는가?
(창50:17) - 허물을 용서함. (마6:14) - 사람의 과실을 용서함, (막11:25) - 혐의를 용서함
(고후2:10) - 무슨 일에나 용서함 (고후12:13) - 공평치 못한 일을 용서함
2. 용서해야 할 이유
(마22:39) - 하나님의 계명이므로
(눅6:37) - 너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눅23:43) -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롬12:20) - 유익이 되기 때문에
(골3:13) - 주께로부터 먼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3. 우리도 용서할 것을 분부하심
(막11:25) - 용서해야 용서를 받는다.
(눅17:4) -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를 하라.
(엡4:32) - 하나님이 용서하심 같이 용서하라.
(골3:13) - 주께서 용서하심 같이 용서하라.
4.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마12:31) - 성령을 훼방하는 죄
(마12:32) - 성령을 거역하는 죄
(히6:4-6) -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죄
(히10:26-31) - 은혜의 성령을 모욕하는 죄
1. 용서의 이중성(二重性)
최근 과거의 불의에 대한 (5공 청문회에서)용서의 문제가 전국을 논쟁의 와중으로 이끌고 있다. "용서하자"라는 주장과 자기의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이러한 문제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명백하다.
성경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고 있다. 용서에는 한계가 없으며 용서해 주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요 책임임을 선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이 자신의 죄에대하여 깨닫기도 전에 이미 용서를 선포해 놓으셨다. 인간에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용서를 빌러오기전에 이미 선포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하여 사과하면 용서하겠다가 아니라 사과하러 오기도 전에 용서해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성서적인 용서관이다.
그러나 용서가 용서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용서의 선포가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용서받아야 하는 자의 책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자신의 죄악에 대한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인정이다. 용서하기도 쉬운일은 결코 아니지만 다른 사람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과 인정, 즉 회개가 없이는 용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차대전중에 처형당한 독일의 본회퍼복사는 제자의 길에서 용서의 은혜에 대하여 이러한 관계를 잘 설명하였다.
회개함이 없는 용서는 값싼 싸구려 은혜라고.
성경에서 인간을 향해 용서를,죄사함을 선언하였으면서도, 그 댓가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으면서도,회개를 강조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의 가치가 회개함을 통해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성경도 용서를 선포하였을 것이다. 이 용서는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귀중한 은혜이며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 은혜와 기쁨을 맛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용감하게 신인하고 또한 그것을 정녕 가슴아파하는 사람이다. 우선적으로 선언되는 용서, 그리고 그것을 회개함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모든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리라고 믿는다.
2.진정한 용서
☞참고: 예화 [그리스도]편 8번 "최후의 만찬"참조.
3.용서
서로 용서하라 이 세상에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그것은 용서다.
- 톨스토이 -
4.용서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일은 모든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일이다.
- 마틴 루터 -
5.용서의 신비
코리텐 붐 여사는 화란 사람이었다.
2차 대전중 쫓기는 유대인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나치 수용소에 갇혔고,혹독한 고문끝에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후 그녀는 전도자가 되어 온 세계에 다니며 용서의 복음을 전했다.
그녀가 용서의 메세지를 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
독일에서 그를 청하여 특별 집회를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느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자기 손을 잡은 노신사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바로 자기 가족을 고문하여 죽게하고, 자신의 꽃다운 처녀시절 옷을 벗기고 때리고 고문하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주던 바로 그 전범이 아직 살아서 자신과 악수하고 있지 않은가?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졌노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의 은총을 힘입고 그 원수까지도 용서하였으며 그를 마음으로 용서하는 순간 그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했다.
= 용서는 하나님때문에 해야하고 용서 받아야 할 너를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나를 위해서도 용서하며 사는 생활이 절대 필요하다.
6.죄사함
어느날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같이 도말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읽고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던 어떤 소년의 이야기다.
“엄마,하나님이 나의 죄를 도말하겠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요? 하나님이 그 죄를 어떻게 하시려는 거예요?난 하나님이 그 죄를 어떻게 도말하고 어떻게 치우시는지 모르겠어요.도말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예요?“
어머니는 소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너 어제 석판에다가 글씨를 쓰지 않았었니?”
“예”라고 소년이 대답했다.
“그럼 그것을 나에게 가지고 오렴”
그 소년은 석판을 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그 소년이 볼수 있게끔 석판을 붙잡고 말했다.
“네가 썼던 글씨가 어디있니?”
“아 그거요,지워 버렸는데요 ”
“어쨌든 그 글씨가 어디있니?”
“왜 그러세요, 업마 난 잘 몰라요”
“그렇지만 그 글씨가 정말 여기에 씌여져 있었다면 네가 그것을 어떻게 치울 수 있었니?”
“모르겠어요 엄마, 내가 아는 것은요 글씨가 거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는 것 뿐이예요.”
“그거야, 하나님께서 네 허물을 도말하시겠다고 하셨을 때 뜻하신 것이 바로 그거야”
7.은혜를 베푸는 사람
진나라 영공은 포악무도한 왕이었다. 그는 성안에 도원이라는 꽃밭을 만들어 놓고 온갖 놀이를 하면서 생을 즐겼다.
어느날이었다. 탄환으로 새를 쏘던 왕은 문득 새보다는 사람을 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신 도안가라는 사람과 내기를 한다. 탄환으로 눈을 맞히되 팔이나 어깨를 맞히면 무승부로 하고 아무데도 못맞히면 큰 잔으로 벌주를 마시기로 했다. 이런 형편이니 죄없는 백성들의 원성이 오죽했겠는가?
어느날 그는 갑자기 곰발바닥 요리를 대령하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 요리는 오랜시간 삶아야 하는 것이었는데 궁중 요리를 담당한 요리사는 왕의 성화가 하도 급하여 허둥지둥 요리를 해서 바쳤다. 그런데 그 요리를 먹어본 왕은 충분히 익지도 않은 요리를 가져왔다고 그를 때려죽인다음 그의 사지를 토막내어 버리고 말았다.
왕의 이런 횡포에 견디다 못한 군사들이 마침내 들고 일어나 영공을 죽여버렸는데 그때 영공을 감사고 도는 자가 한명도 없었다. 천하 만민이 그가 죽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나라 장왕이 있었다.
왕은 신하들과 더불어 연회를 베풀고 있었는데 낮에 시작한 파티가 밤이 깊도록 계속되자 연회석엔 무수한 촛불들을 밝혀 놓앗다. 이렇게 연회의 흥취가 무르익고 있을 때였다. 왕은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허희라는 여인에게 여기 참석한 신하들에게 술 한잔씩 따라드리라고 했다. 왕의 특별한 호의였다.
한참 허희가 술을 부어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일진 광풍이 불어 촛불이 모조리 꺼져버리자 연회석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 휩싸여 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주가 허희의 가냘푼 허리를 감아 당기는 것이 아닌가? 허희는 순간적으로 그 사람의 갓 끈을 끊어쥐고 몸을 뺀다음 왕에게로 달려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왕은 불을 켜려는 시종들의 동작을 제지하면서 말했다. 오늘은군신간의 허물없는 즐거움을 위하여 마련한 자리니 경들은 지금부터 거추장스러운 갓끈을 모조리 끊어 팽개치고 마음껏 술을 들자고 권했다. 모든 사람들이 갓끈을 끊어버리고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갔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서다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전쟁이 잇었다. 그때 선봉을 자청한 당교라는 장수의 특별한 지략으로 예기치 못한 전과를 올리자 왕은 그에게 특별한 상을 주려고 햇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미 왕으로부터 한없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더 이상 상을 받을 수 없다며 그 옛날 연회석상에서 허희의 허리를 안은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고백했다.
그대 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오히려 그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8.진실된 고백
2차 대전때의 일이다.영국의 한 비행사관이 독일기 하나를 격추시켰다. 적기가 지산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그 적병의 생명이 염려스러워서 적기를 따라 착륙했던 영국 비행사관은 죽은 자의 몸에서 한장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너의 어머니로 부터]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전투를 끝내고 안전하게 돌아온 이 영국 비행사관은 전사한 돌인 비행사관의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인즉 자신은 그 아들이 미워서도, 죽이고 싶어서도, 아닌 전쟁이라는 잔인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이게 되었으며 또한 자신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죽은 아들의 심정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편지가 중립국을 통해 독일의 그 어머니에게 전해진 후 몇일 뒤 그 영국 사관은 한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보내주신 편지를 받기 전에 이미 아들의 전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느때 같았으면 당신을 원망했겠지만 편지의 사연을 읽고 보니 그 원수가 도리어 아들로 소생해서 이 어미에게 편지를 보내준 듯이 느겨집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때가 오면 자신을 어머니로 여기고 꼭 찾아와 달라는 부탁과 사진에 쓰여 있던 “너의 어머니로부터”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처참한 전쟁터에서도 아름다운 인간애의 꽃을 피운 감격스런 이야기다 영국 병사와 독일군 병사의 어머니가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였다면 서로에게 용서라는 보상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의 법도 우리가 잘못한 것에대한 배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정 나의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9.용서하고 사랑하라(마18:21-35)
보우그라는 마을에 우고린이라는 본성이 착한 곱추가 살고있었다. 그는 모든 동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우고린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며 그의 어머니는 주정뱅이여서 소랑케라는 그의 누이와 함께 살았다.
그의 누이 소랑케가 어느날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얼마후 석방되었을때 불구인 동생이 병석에 눕게 되었는데 직장을 얻을수가 없어 그녀의 몸을 팔아 동생의 약값을 대었다. 어느날 우고린은 몰지각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였다. 그들은 우고린을 넘어뜨리고 그를 중심으로 춤을 추면서 “네 누이의 연인들이 각각 한 프랑씩을 지불했다.”라고 조소하며 그를 모욕하였다. 그 때 그 동리의 나이많은 한 신부가 와서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우고린을 구해주었다. 그 다음날 그 곱추는 모멸감과 치욕을 참을수 없어 강에 뛰어들에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누이 소랑케는 총으로 자살하였다.
그 늙은 신부는 “이 어린 것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비가 없는 사회에 의해 살해당했다”라고 비통하게 말했다. 장례식때 교회가 가득 찼다. 그 신부는 강단에서 추도 설교를 하면서 통곡하였다.
“기독교인들이여, 생사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나에게 너의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주님께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 번째로 나에게 네 양이 어디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들은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리떼였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동정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인 내적 확신의 외적 표출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여러분 속에 용서의 영이 없다면 여러분은 용서를 받았을 리가 없다고 말하게 될 것이며 이것은 엄숙하고 심각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하는 여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가 아니하는가로 선언하는 셈이 된다. 만일 용서를 받았다면 용서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우리들의 날」피에르 판 파센 著-
10. 긍휼의 씨앗
차머즈라는 사람은 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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