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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나이팅게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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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나이팅게일 외)



  ▶백의에 천사 '나이팅게일'이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날 이런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가 그의 사명을 시작한 나이다. 주님, 저도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이제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 헌신적인 간호사로서 나이팅게일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성공적인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사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우리 모두의 존경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노래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희생의 대명사, 존경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어머니 노래'가 있습니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그래서 어머니를 찬양하는 노래가 생겼고, 선생님은 고마운 분이라 존경해서 '스승의 노래'가 생겼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아마 영원히 안 나올 거 같습니다.

  우리 민족성은 본래부터 노래를 좋아하는 백성입니다. 생활 가운데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감정을 그 하고 있는 일에 맞추어서 노래로 표현한 민족입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나무를 해서 등에다 잔뜩 걸머지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땀을 흘리면서도 그 고난을 해소하는 노래가 있어서 즐겁게 했습니다.

  지금은 모 심는 일이 기계화되었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엎드려서 하나씩, 하나씩 논에다 모를 심었는데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모를 심으면서 그 노래를 부르면 힘든 고난을 잊어버립니다.

  또, 여섯 명이 양쪽에서 어깨에 장대를 꽂아서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하면서도 그냥 가는 게 아닙니다. 장단을 맞추어서 '어기어 차, 어기어 차!' 하면서 발을 맞추어서 재미있게 했습니다. 슬기로운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부르는 노래도 따로 있습니다. '고초당초 맵다 하나 시집살이 당할 손가?' 그러면서 고난을 참았습니다. 하다 못 해 사람이 죽어서 상여를 매고 나가면서도 그 슬픔과 고통을 이기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엉차 어어어야!' 상두꾼이 종소리를 쩔렁쩔렁 흔들면서 부르면 모두 따라서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하면서 '딸네 집에 갔더니 술 한 잔도 안 주고!' 이렇게 고난을 다 노래로 소화시켰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슬퍼서 그 서러운 역사 때문에 문학이 '비애 문학'으로 발전했습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한국의 가수가 히트송을 부르려면 이별가를 불러야 했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허공' '이별의 부산 정거장' '비 내리는 호남선' '목포의 눈물' '그때 그 사람' 다 이별가입니다. 비가 오고 헤어지고 울어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그런데 지금 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보십시오. 그런 애절한 감정이 없습니다.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이면 노래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민족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노래를 좋아하느냐 하면 온 세상에 노래방 문화가 이렇게 발전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답니다.

  여러분, 세상사람들도 이렇게 흥이 겨워 노래하는데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 속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줄 믿습니다.

  히브리말로 '찬송하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단어가 '하랄' 즉 '영광을 돌리다.'는 말인데, 이것이 '할렐루야'가 된 것입니다.



  ▶시골 은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은행 여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창구 여직원이 물었습니다. '할매, 비밀번호가 뭐라요?'

  그러자 할머니는 아주 가는 목소리로 '비/둘/기'라고 말했습니다. 매우 황당한 여직원이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할매요, 비밀번호를 말 안 하면 돈 못 찾는다 앙이요, 비밀번호 말 하이소'

  그러자 살짝 입을 가리신 할머니는 한 번 더 '비/둘/기'라고 했습니다. 인내에 한계를 보인 여직원은 '할매요, 바쁜데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와 이라는 교? 퍼뜩 비밀번호 대이소!'라고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그제야 할머니가 비밀번호를 말하는데 온 은행 직원들은 배꼽을 잡고 웃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의 비밀번호는 바로 '9999'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행창구에서 내 돈을 찾는데도 이 비밀번호를 꼭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여는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입니다. 헬라어로는 '하나님 송축합니다.'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황제 루이14세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완성하고 프랑스의 권위를 세계에 널리 떨친 왕입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카톨릭 신자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신교를 엄청 박해했다고 합니다. 특히 신교의 대표격이던 '세오졸프'에게 '칙령 거역 죄'라는 죄목으로 파리 에펠탑 꼭대기 위의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 해 부활절에 루이14세는 황제의 위엄을 갖추고 호화찬란한 부활절 행렬 대를 거느리고 파리 시내를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세오졸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찬송을 큰소리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 왕의 왕이 되시고 우리들의 중보되심 성령 증거하시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 구주 예수 부활하사 처음 열매 되셨네'(159장)라는 곡이었습니다.

  그때 '왕의 왕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가사가 루이14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곧장 감옥으로 달려가 세오졸프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후 그를 석방하고 신앙의 자유를 선포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그 분이 우리들의 '만 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일본이 낳은 종교가입니다. 고배(神戶)에서 첩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그는 늘 첩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눈치를 보며 자라야만 했습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왜 나 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늘 부모를 원망하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담 모퉁이에 기대서서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 북 치고 나팔 불며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대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전도하며 외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 순간 가가와 도요히코는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시나요?' '아무렴, 하나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의 글 가운데 '나는 기생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당당히 외쳤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중에서도 최고의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복'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신다고 합니다. 이를 성경은 '양자 됨'이라고 말합니다.

  원래 유대인의 개념엔 양자 됨이 없습니다. 성경은 로마의 양자 개념을 빌려와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사회에서 어떤 귀족이나 부자에게 자식이 없으면 때로 노예 중에서 아들을 삼는 일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뉴스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노예에겐 천지개벽과도 같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1962년 당시 천문학적 제작비인 1,500만 불을 들여 만들고 무려 8번이나 재개봉을 했던 영화가 있습니다. 125,477명이 출연, 제작기간 10년이 걸려서 만든 영화 '벤허'입니다.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수상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벤허는 허(Hur)씨의 외아들이란 뜻입니다. 허씨 가문은 예수님과 같은 시대 예루살렘에서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살던 부호가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로마의 신임 총독이 부임하게 되고 부임 축하 행진 중에 벤허의 여동생의 실수로 기왓장이 총독의 머리에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총독을 수행하던 멧살라라는 장교가 있었는데 그는 벤허의 옛친구였습니다.

  바로 그 멧살라가 벤허의 어머니, 누이, 연인을 감옥에 보내고 재산을 몰수하고 벤허를 노예로 팔아 벤허는 갤리선의 노를 젖는 중노동을 합니다. 노예가 된 벤허는 갤리선(노예를 이용한 군용선)의 사령관 아리우스의 눈에 띄게 되고, 이 배가 해적선의 습격을 받았을 때 벤허는 사령관을 구하는 생명의 은인이 됩니다.

  그래서 사령관은 벤허를 양자로 삼고 끼고 있던 반지를 벤허에게 끼어줍니다. 그때부터 벤허는 아리우스 가문의 모든 권한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됩니다. 벤허는 로마의 귀족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멋있는 복수를 합니다. 이것이 양자라는 로마의 제도입니다.



  ▶18세기 독일에 '진젠도르프' 백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재산과 토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날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갔습니다.

  이 그림 저 그림을 보다가 한 그림에 눈이 멈춰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그림이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쓰여 있습니다. 양손에는 대못이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는 창에 찔린 채 피가 흘러내리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피가 진짜 흐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예수께서 나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는데, 나는 예수를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충격적 사건이 진젠도르프 백작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진젠도르프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졌습니다. 많은 토지를 떼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마침 그 때 모라비안 교도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 진젠도르프의 영지 가까이 피신을 왔을 때 그들에게 많은 땅을 내어주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곳에 헤른포트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경건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진젠도르프의 눈에 보였던 예수의 붉은 피가 십자가에 흐르고 있음을 우리도 보아야 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아도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예수의 붉은 피를 보아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필립 브룩스' 목사가 중한 병에 들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교회의 성도들이 문안을 가도 방문을 사절합니다. 병 문안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도시의 유명한 법률가 잉거솔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성도들이 말하기를 '잉거솔도 면회를 못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브룩스 목사가 잉거솔의 방문을 받아들였습니다. 잉거솔은 우쭐해졌습니다. '내가 유명인사가 되니까 브룩스 목사가 방문을 허락하고 만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잉거솔이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저 같은 사람을 만나주시니 영광입니다. 기회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브룩스 목사가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천국에 가서 만나겠지만, 왠지 당신과는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기에 세상에서 한 번 보고 가야 한다면서, 그를 깨우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였습니다.



  ▶독일의 '힐츠' 산맥에는 카나리아를 사육하는 조류공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카나리아의 소리를 들은 방문객들은 놀라운 탄성을 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원의 주인은 새를 팔 때 노래를 주도하는 솔리스트(Solist) 카나리아는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나리아 새들의 합창단 속에는 노래를 주도하는 몇 마리의 솔리스트가 있는데, 이 새들이 다른 새들을 자극해서 아름다운 화음을 엮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삶이 힘이 드십니까? 앞날이 암울합니까? 인생살이가 고통스럽습니까? 솔리스트 카나리아처럼 먼저 찬송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뉴저지주의 프린스턴 신학대학에 신약학 교수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채플 시간에 전혀 찬송을 부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유인즉 본인이 음치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별명을 '음치'라고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수가 어찌된 일인지 채플시간에 찬송을 힘차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놀란 학생들은 음정도 틀리고 박자도 희한하게 틀렸지만 목소리만은 힘차게 나오기에 의아심이 생겼습니다.

  강의 시간에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찬송을 다 부르시고' 그랬더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백하기를 '전날 밤 꿈을 꾸었다는 겁니다. 천국에 이르러 노크를 했더니 베드로가 누구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을 어릴 적부터 신자요 지금은 신학대학 교수라고 소개를 했더니, 베드로가 장부 같은 것을 뒤지며 말하기를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건 많은데,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군요. 천국은 지식이 많은 신학 박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자를 원합니다. 다시 가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오시오!' 하더니 천국 문이 탕하고 닫혀서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며,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응답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찬송할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남자가 교회를 다니는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집이 몹시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여자친구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녀의 집이 가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집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여자친구와 그녀의 엄마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여자 친구의 엄마가 '어휴, 먹을게 없네. 어떻게 해. 이대로 죽어야 하나?'라고 하자, 여자 친구가 '엄마 먹을 게 없으면 똥이라도 드세요. 죽긴 왜 죽어 살아야지'

  남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 친구 네가 잘 살지 못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그 남자는 집으로 뛰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수 있는 건 죄다 꺼내 가지고 여자 친구네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 친구하고 그녀의 엄마가 고스톱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면 고스톱도 버려야 합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살전5:22절은 말씀하였습니다.



  ▶식물학자들이 알프스 산에서 아주 희귀한 꽃 한 송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은 절벽의 바위 위에서 자라나고 있었기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은 마을의 양치는 소년에게 금화를 주면서 절벽 위의 꽃을 꺾어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소년은 금화를 갖고 싶었지만 절벽 위에 있는 꽃을 가져오는 일이 대단히 위험한 것을 알았습니다. 한참동안 생각하던 소년은 일행을 떠났다가 잠시 후에 노인 한 사람의 손을 잡고 돌아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절벽까지 흥분이 된 채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지켜보는 식물학자들에게 크게 외쳤습니다.

  '이제 로프를 제 팔 아래로 묶어 주세요. 그리고 우리 아빠로 하여금 로프를 잡게 하시면 저는 저 절벽위로 올라 갈 것입니다.'

  아버지가 옆에 서 있는 동안은 절벽도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도 언제나 안전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풍파도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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