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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귀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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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귀신 외)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사람이 죽은 후, 그 혼이 귀신이 된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국제선교원장인 신태웅 박사는 '한국귀신 연구'라는 책에서 '한국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魂) 귀(鬼)와 백(魄) 등, 세 가지로 분리하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에 귀의하고 귀는 공중에 존재하여 이 귀가 일반적으로 신주(神主)로서 영접되어 각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와서 음식을 먹는다'고 믿는다고 썼습니다.

  이 외에 귀신은 비명(非命)에 죽거나 원한으로 죽은 자들의 귀가 귀신이 되어 공중에 떠돌아다닌다고 한국 사람들은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기독교적인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사들 중에 3분지 1에 해당하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서 반역을 일으켰다가 쫓겨난 자들로, 그 중의 하나였던 천사장 루시퍼가 귀신의 대장인 마귀가 되고 그 밑에 있던 부하 천사들이 귀신들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 동안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사오정 시리즈'가 있습니다. 사오정과 손오공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시험을 치르러 어느 회사에 갔습니다. 손오공이 먼저 면접장에 들어갔습니다. '15번 손오공입니다.' 면접관이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자네 축구 선수 중에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가?' '예,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박지성입니다.' '산업혁명은 언제 시작됐나?' '예, 18세기입니다.' '자네, 하나님은 있다고 믿는가?' '예, 과학적으로 증명은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면접을 잘 마치고 나간 손오공이 밖에서 면접순서를 기다리면서 벌벌 떨고 있는 사오정을 보고는, 불쌍해서 첫 번째 질문부터 순서대로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오정은 열심히 질문과 답을 순서대로 외우면서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자기 이름이 호명이 되자 사오정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오정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27번입니다.'라고 번호만 말했습니다.

  사오정이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자, 면접위원이 묻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예,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박지성입니다.' '뭐?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나?' '예, 18세기부터입니다.' '자네 혹시 바보 아닌가?' '예, 과학적으로 증명은 안 되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만든 우스개 소리이지만, 사오정의 모습은 어쩌면 자신이 누군가를 모르고 살아가는 오늘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의외로 나 자신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질문을 했지만, 우리는 사실 내가 누구인지를, 나의 정체성을 잘 모르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요1:12절에 보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저와 여러분을 죄와 죽음에서, 멸망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그의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온갖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림을 당하셨고,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기 위하여 대신 징계를 받으셨고, 우리의 연약함과 상함을 고치시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 중에 입신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천사가 그에게 큰 책을 갖다 놓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책입니까?' '행위 록이라는 책인데 당신이 세상에 있을 때 행한 모든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첫 장을 넘기니까 잔글씨로 가득 씌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기록입니까? 천사는 '당신이 세상에서 행동으로 지은 죄입니다.'

  그 다음 둘째 장은 첫 장 보다 더 작은 글씨로 가득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세상에서 말로 지은 죄'입니다. 말로 지는 죄는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셋째 장을 들여다보니까 둘째 장 보다 더 잔글씨로 많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슨 기록입니까? 천사는 '당신이 마음속으로 생각으로 지은 죄입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는 더 많습니다. 그리고 한 장은 또 들추어보니 이것은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고 새까맣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란 생명에 불필요한 세상 것들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회개란 생명에 불필요한 세상으로 가득, 자기 의에 가득, 죄로 가득, 가득가득한 내용물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천국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두 명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림입니다.

  1417년 독일의 뉴른베르그 마을에 알버트 뒤러라는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자라면서 그는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대장장이 아들이라 학교에 가서 공부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뒤러에게는 정말 좋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가난해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는데 둘은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친구가 일을 해서 뒤러의 학비를 대주어 뒤러가 먼저 공부하고 나중에는 반대로 뒤러가 일하고 친구가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알버트 뒤러의 그림이 한 폭 두 폭 팔리기 시작하자 뒤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를 찾았습니다. 친구의 집 문을 들어서는 순간, 구석진 곳에서 친구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무뎌져서 이제 그림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사랑하는 친구, 알버트 뒤러만큼은 세계적인 화가가 되게 하여 주세요!'

  그 기도 소리에 감동을 받은 뒤러는 스케치 연필로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기도의 손'이라는 그림입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기적을 만드는 기도입니다. 여기 여호수아의 승리와 태양을 멈추게 한 기도의 위력이 나타난 것은 이방 족속 기브온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종의 중보기도입니다.

  또 하나의 기도하는 그림은 밀레가 그린 '만종'입니다. 이 그림은 원래 70$밖에 안 되는 물감과 종이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어느 미국인이 12만 5천$에 사갔습니다. 프랑스에서 다시 이 그림을 15만$에 사서 본국으로 가져와 루불 박물관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지금 이 그림의 값은 메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언제나 성실함과 경건함, 겸손과 평화와 감사를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다가 멀리서 예배당의 종소리가 들려올 때 괭이와 삽을 내려놓고 조용히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경건한 부부의 모습에서 참 행복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그림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가인 박범신씨가 지은 소설가운데 '촐라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어 누적 방문자수 100만을 돌파한 화제의 작품입니다. 그것을 단행본으로 엮어 출간한 것입니다.  

  '촐라체'는 히말라야 정상부근에 있는 해발 6440미터의 한 봉우리의 이름입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관문으로서 험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우리나라의 제일 높은 백두산이 2744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이것이 단순한 봉우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곳은 모두 빙벽으로 되어 있어서 전문 산악인들도 오르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2005년 1월 한국의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 두 사람은 여기 촐라체 북벽 등반에 성공했습니다. 촐라체 북벽은 수직고만 해도 2천여 미터 가까운 난벽입니다. 지금까지 이 거벽에 도전해 성공한 팀은 1955년 프랑스 팀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원정대는 많은 자본과 물자를 투입해 고정로프를 깔면서 올라가는 등반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올라간 두 사람의 등반은 세계 등반 사에 길이 남는 획기적인 성과였습니다. 특히 정상에 오른 이들이 하산하면서 최강식이 미끄러져 박정헌의 로프에 묶여 있었는데, 무게를 견디며 로프를 끊지 않고 마침내 동료를 구해내었습니다. 

  소설은 바로 이런 실제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입니다. 거기에다 작가는 배다른 두 주인공의 기구한 삶 속에서 그들 인생에 넘어가야 할 것을 촐라체를 통해 잘 보여줍니다. 

  결국 인생은 무수히 넘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촐라체의 봉우리처럼 극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인생의 촐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야 합니다. 이 소설은 촐라체를 통해, 바로 우리 인생에 누구라도 넘어야 할 촐라체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울대종교학과 교수를 지내다가 지금은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활동하는 정진홍교수의 칼럼을 아주 의미 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먼저 이런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 지 58년이 지났는데 당시 13살이던 아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전쟁으로 아버지도 잃고, 집도 잃었습니다. 그는 내일이 없었고, 꿈조차 꿀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낳았고, 이제 일흔이 넘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온갖 세상물정 다 겪은 세월을 돌아보며 휴식을 누릴 만큼 살림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기 문패가 달린 집도 지니고 삽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 전에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해가 뉘엿거리면 집에 가고 싶었어 그러나 갈 집이 없었지. 그런데도 초조해 못 견딜 만큼 집에 가고 싶었어. 그리고 서서히 어둠이 내렸지. 그런데 지금은 돌아가야 할 집이 있어. 한데 알 수 없는 일이야 집에 가서 발을 뻗고 누웠는데도 여전히 집에 가고 싶은 거야'

  그리고 그 아이는 이렇게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내 성장은 그때 멈추었나봐...'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의학적으로 보면 이 사람의 진단이 단번에 나옵니다. 바로 '외상성신경증'(外傷性神經症)이라는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후유증이라고 말입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혹은 어린 시절 심한 정신적 충격과 압박을 경험한 뒤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다른 말로 이런 상처를 '트라우마'(trauma)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6.25 세대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식민지 세대도, 4. 19세대도, 군사정권 세대도, 민주화 세대도, 아니 모든 세대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두 자기네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고, 그래서 모두 바로 그 시점에서 성장이 멈춘 채 그 이후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교수는 이것을 진단한 뒤 오바마의 치유를 예로 들었고, 우리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역설했습니다. 현실에 대한 정직한 진단과 내일에 대한 꿈이 있다면 우리 모두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믿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기에 더 확실합니다. 트라우마는 치유되고, 변화와 성장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만을 극복하여, 우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교만을 믿음의 힘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 힘입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촐라체는 무엇보다도 내 삶에 성장을 멈추게 한 '트라우마'입니다. 이것을 넘지 않으면 늘 그 자리입니다.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영화는 본래 ABC TV에서 한 흑인 비즈니스맨의 인생을 다큐로 내 보낸 것이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자 이것을 다시 본격적인 영화로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는 계부의 폭력으로 어린 시절을 살아가는데서 시작됩니다. 폭력을 견디지 못한 그의 어머니는 가드너가 8살이 되던 해에 계부가 있던 집에 불을 지르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결국 가드너는 남의 집에 입양되어 어린 시절을 살아갑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정 폭력, 알코올 중독, 아동 학대 등의 상처로 얼룩진 삶이었습니다.

  세일즈맨으로 청년 시절 새 인생을 향한 몸부림을 해보지만 생활고로 어느 날 세금도 못 내고 자동차 마저 압류 당하자 전세 집에서 쫓겨 나가 거리로 내몰리고 그의 아내는 아들을 아빠 곁에 놓아 둔 채 떠나 버립니다.

  1980년대의 을씨년스런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 그는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때로는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때로는 노숙자 쉼터에서 처절한 생존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그는 어머니의 유일한 유산인 기도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고, 그리고 기도하고 있는 한 그는 인생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 하나로 버티었다고 후일 고백합니다.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어느 날 그는 주식 중개인을 만나 인턴이 되고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가드너 앤 리치 컴퍼니 회사를 설립하고 1억 8천만 달러의 윌가의 신화적 사업가가 됩니다.

  이 가드너의 성공 스토리를 취재하기 위해 온 한 기자에게 '당신이 현실의 좌절의 벽을 뛰어넘어 행복을 찾기 위해서 얼마 큼이나 하나님이 필요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제가 노숙자의 삶을 살 때나 CEO의 삶을 살 때나 항상 저는 교회에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하나님이 주실 꿈을 바라보고 있었고, 저는 항상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중년 이상의 성인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내가 10년만 젊었어도'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거나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에 현재에 후회할 일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때로 돌아가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소망이 만들어낸 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타임머신'류의 이야기들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에 개봉되어 대흥행을 거둔 영화 '백 투 더 퓨처'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자신의 유약한 아버지를 돕습니다. 또한, 2011년에 개봉된 영화 '소스코드'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과거의 열차폭발테러 사건으로 돌아가 아예 그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봉쇄 해버립니다. 즉 과거를 조작하여 현재와 미래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이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세월에 대한 후회만 하게 되고, 그 결과 우리의 마음에는 절망과 분노만 남게 됩니다.



  ▶요21장에 보면 요한이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이 오셨다고 소리쳤고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자 너무 반가워 바다로 뛰어내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베드로를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때로 실수도 하고 실패도 많이 하고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다혈질에 성격이 급해서 생각 없이 처신하기도 했지만 베드로는 악의는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베드로의 심정을 아셨습니다. '주님이다'라는 말에 바다로 뛰어 들어가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지금 그 마음에 예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제자에게는 이런 열정이 필요하고 그리스도인에게도 이 열정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이면서 너무 재고 따지고 계산하고 여러 번 두드려보는 신앙인들에게는 절대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계산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베드로 같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이런 열정이 있을 때 뭔가 이루어지고 그곳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가디언지가 젊은이들이 꼭 경험해 보라고 권고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결같이 모험을 해 보고 열정을 가져보라는 내용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스톰스 강에서 서쪽으로 21㎞에 있는 블르크란스(Bloukrans) 다리에서 번지 점프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높이가 216m인 다리 위에서 시속 111㎞로 7초 동안 떨어지는 그 쾌감을 한번 맛보라는 것입니다. 그 쾌감을 맛보는 것은 젊은이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모험심도 열정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재고 따지고 열 번 스무 번 두드려서는 평생 뛰어 내릴 수가 없습니다. 또 시베리아 철도로 아시아를 횡단해 보라고 했습니다. 북경에서 출발하여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까지 밤낮 한 달 동안 기차를 타 보면 교만도 자만도 부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페루의 잉카 유적지를 돌아보라고 했습니다. 4천m의 고지에 조성된 3만 2,529 헥타의 마추비추 유적지를 돌아보면 생각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호주 시드니 항구에 있는 300m 나 되는 높은 다리 위에 설치된 아치 위의 등반코스를 올라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올라서게 되면 내 존재가 아주 작게 느껴지는 모습에서 겸허함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용기와 모험심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젊은이에게는 때로 이런 용기, 의지, 결단력, 모험심,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젊은이만 그런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신앙 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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