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행복과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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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행복과 불행)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
1.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기도하고,
불행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기도한다.
2.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 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3. 남의 칭찬을 자주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자기자랑을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5. 일을 보람으로 아는 사람은 행복하고,
의무로 아는 사람은 불행하다.
6.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투덜대는 사람은 불행하다.
7. 평생 고마웠던 일만 마음에 두는 사람은 행복하고,
섭섭했던 일만 마음에 담는 사람은 불행하다.
8. 남이 잘 되는 것을 축복하고 위로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프고 실패하면 통쾌해 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9.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은 행복하고,
말로 보여주는 사람은 불행하다.
10.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부드러운 사람은 행복하고,
자기에게 후하고 남에게 가혹한 사람은 불행하다.
11.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 사람은 행복하고,
불평으로 먹는 사람은 불행하다.
12. 마음까지 화장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얼굴만 화장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13. 자신의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잘못했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
14.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걷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15.누구에게나 배우려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자신이 만물박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16. 잘 된 이유를 찾는 사람은 행복하고,
안 될 이유만 찾는 사람은 불행하다.
17. 공과 사가 분명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18. 아는 것이 적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행복하고,
아는 것이 많아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19. 해야 할 일이 많음을 긍지로 여기는 사람은 행복하고,
그것을 불만으로 여기는 사 람은 불행하다.
20. 겸손과 양보가 몸에 밴 사람은 행복하고,
교만과 거만히 몸에 밴 사람은 불행하다.
21. 목소리가 힘차고 생기 있는 사람은 행복하고,
기어 들어가는 사람은 불행하다.
22. 남의 잘못을 잘 용납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자기의 잘못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23.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24.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자기의 잘못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25. 죽음의 삶의 연장이라고 태연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죽음이 끝이라고 무서워하며 불안에 떠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26. 차 탈 수 있는데 걷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걸을 수 있는데 타는 사람은 불행 한 사람이다.
27.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입이 원하는 음식을 먹는 사람 은 불행한 사람이다.
28. 좋은 의견이 나오고 해 보자고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보나마나 뻔하다고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29. 배에 힘을 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목에 힘을 주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30. 할 일을 다 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시작도 않고 요행을 기다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간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선교를 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좌절도 왔습니다. 실망도 됐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해변 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모래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선교사는 모래 한 주먹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념으로 가지고 가려고 봉지에 담았습니다. 그 때 모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교사님! 내 사명은 이 곳에서 이 해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가지고 겨서 방안에 두면 내 사명을 잃어버립니다. 가지고 가지 마세요.'
모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을 때에 선교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선교사님의 사명은 아프리카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선교사가 아닙니다.'
선교사님은 돌아가기를 포기고 끝까지 남아 아프리카 영혼을 위하여 일하다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늘 나라로 갈 것을 바라보면서 이 곳에서 영혼 구원에 앞장서야 합니다.
▶영국에 '크롬웰'이란 사람이 전도하다가 천주교 신도인 메리 여왕의 핍박으로 인해 죽게 되었습니다. 처형대의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이 여섯 번만 울리면 사형을 집행하게 되어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종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종지기에게 사람을 보내어 확인해 보았더니 분명히 종을 쳤는데 종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 탑 꼭대기에 올라가 보았더니 한 여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종에 매달려 죽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크롬웰의 애인인데 크롬웰을 살리고자 온갖 애를 다 써보았지만 길이 없자, 종 탑에 올라가 종을 몸으로 부둥켜안고 종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 후 자신은 종 틀에 끼어 그렇게 죽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메리 여왕이 직접 그 곳으로 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메리 여왕은 말하기를 '오 값진 희생! 크롬웰을 대신하여 죽었구나. 크롬웰을 석방하라. 그를 대신하여 애인이 죽었도다. 크롬웰을 위하여 대신 죽는 사람도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석방된 크롬웰은 손수건에 애인의 피를 묻히고 '이 피는 나를 위한 희생의 피'라고 울먹이며 피 묻은 손수건을 가슴에 간직한 채 일생동안 다른 여자를 사랑하거나 결혼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답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정근모 장로님은 젊었을 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서울대학교에 막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에는 국비로 미국에 유학을 갔습니다.
이 분에게는 다정한 친구 하나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기이고, 대학교는 일년 후배입니다. 그 친구는 김재익이라고 하는데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그 친구 역시 서울대학에 입학합니다. 경제를 공부합니다.
이 정근모씨는 원자계통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들은 유학 중에 떨어져서 공부했고 공부해도 분야가 다르지 않습니까? 그 사이에 정근모씨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를 영접하고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정근모씨는 과학기술처 장관이 되고, 김재익 씨는 대통령 실에서 경제 담당 수석비서관이 됩니다. 바쁜 시간 중에 시간을 내서 만나면 경제 이야기, 과학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러다가 정작 헤어지고 생각해보면 해야 될 예수님 이야기는 하지 못하였답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예수님 이야기를 하리라'고 다짐하였지만 또 만나면 경제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와 과학 이야기만을 했답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헤어진 다음에는 후회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대통령 일행이 미얀마의 아웅산에서 참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 경제 수석도 함께 참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중국에서 들었습니다. 그는 즉시 달려와서 시신 앞에서 얼마나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치는지 '내가 그때 경제 이야기는 안 해도 되었고, 과학 이야기도 안 했어도 되지 않았나? 더 급한 이야기가 있는데!' 하면서 '예수님 이야기 하늘나라 이야기 왜 안 했던가?'하면서 땅을 치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었고 전도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었다가 후회막급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을 그런 경험이 없습니까? 안 해도 될 이야기는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면서 정작 해야 될 하나님 나라 이야기, 예수 소리는 못하지 않았습니까?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사 42:1-4절 말씀 중 '상한 갈대'라는 말씀을 묵상하던 가운데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답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파스칼이 볼 때 인간은 피조물 중에 정말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서 비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약한 존재가 생각을 하게 될 때 피조물 중에 가장 능력 있는 존재로서 위대함을 가지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생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며 살아갈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생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너무 바빠서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며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늘 예수를 생각하며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를 닮아가게 됩니다. 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살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늘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살면 자신의 마음도 예수님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면 외모조차도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하되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빌3;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주목하다'는 뜻을 갖습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며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누군가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가 주는 소중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에는 삼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받는 단계'입니다.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이 단계는 '주시옵소서!' 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둘째 단계는 '감사의 단계'입니다. 받은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주신 은혜와 축복에 감사해서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하게 되고 찬양하게 됩니다.
셋째 단계는 '드리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감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시간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생명을 드리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물질을 드립니다. 이 단계까지 와야 축복을 더 받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드릴 때 축복을 더 받기 때문입니다.
눅6: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신앙의 첫 단계는 잘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⑴잘 들어야 지혜가 생깁니다. 잠23:19절에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⑵듣고 돌이켜야 합니다. 잠1:23절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⑶듣고 악한 길에서 떠나라! 렘26:3절에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⑷들어야 찔림이 옵니다. 행2:37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⑸듣고 행하라! 빌4:9절에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⑹잘 들어야 복을 받습니다. 계1:3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 다미앤'이라는 사람은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문둥이들을 상대로 해서 전도를 했는데 너무 깨끗한 얼굴을 가지고 전도를 아니까 잘 먹혀 들어가지가 않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께 '나도 저 사람들처럼 문둥병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했다는 합니다.
그러고는 사람들과 살을 비비고 함께 살고 해서 나중에는 자신도 문둥병자가 되어서 그 사람들과 똑같은 처지가 되어서 효과 있게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권사님이 건강을 위해서 날마다 공원을 한 바퀴씩 산책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다 보니까, 그냥 공원만 돌 것이 아니라 뭔가 좋은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전도지를 만나는 사람마다 주었습니다.
그 후 2년이 지났습니다. 권사님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며느리 되는 처녀는 권사님이 2년 전에 전도를 했던 자매였습니다.
그 자매는 권사님이 공원에서 나눠준 전도지를 받고 교회에 나가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청년이 바로 권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권사님의 전도가 착한 며느리를 얻게 한 것입니다.
▶'빅톨 유고'가 쓴 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란서 혁명직후에 병사들이 숲을 지나가는데 전쟁에 지친 사람들 중에 한 어머니가 아이 셋을 데리고 길바닥에 굶주려 지쳐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상사가 빵을 하나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그 빵을 주워서 세 조각으로 나누어 아이에게 각각 주고는 자기는 자식들이 먹는 것을 쳐다보고 기뻐 웃고 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말하기를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가 봐' 그때 상사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에 안 먹는 거야'
어머니이기 때문에 자기는 굶어도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것을 기뻐하는 게 어머니의 모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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