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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어글리 코리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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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어글리 코리아 외)



  ▶최근에 들어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인들의 모습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의 모습을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89년 영화 '똑바로 살아라'에서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째진 눈들이 뉴욕의 과일 야채 상점을 다 차지했어. 88올림픽 엿 먹어라' 한국인들은 돈만 아는 독종이라는 것입니다.

  93년 영화 '폴링다운'에서는 '한국전 때 도와줬건만 배은망덕한 놈들 영어도 못하면서 돈만 밝히는 주제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95년 영화 '아웃 브레이크'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기는 정말 나쁜 배가 바로 한국 국기를 단 배로 나옵니다.

  최근 '007 어나더데이'라는 영화는 한국을 왜곡해서 그리기 때문에 국내에서 안보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자존심이 상합니다. '우리 모습이 왜 이렇게 비쳐지고 있는가?'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꿀벌이 꿀이 가득 담긴 꿀단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산이고 들이고 다니며 이 꽃 저 꽃에서 꿀을 따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꿀단지 속에서 꿀을 빨기 시작합니다. 점점 꿀단지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배가 부르고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섭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날개가 꿀에 박혀서 빼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그렇게 좋아하는 꿀에 묻혀서 죽어갔습니다.

  꿀벌이 꿀벌 정신을 잃어버리고 꿀에 묻혀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정신을 잃어버리면 세상에 파묻혀 그 영이 죽어갑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히브리 랍비의 교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둘 달린 아이를 낳았습니다. 이 아이가 한 명이냐 두 명이냐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랍비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이쪽 아이를 때렸을 때에 저쪽 아이도 울면 한 아이요, 이쪽 아이를 때려도 저쪽 아이가 울지 않으면 두 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입니다. 내가 누구를 '안다, 사랑한다.'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아픔과 기쁨이 내게 전달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마음, 주님의 뜻, 주님의 기쁨과 주님의 괴로움이 내 가슴에 전달되는 일체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제인 아담스(Jane Adams, 1860-1935)는 시카고의 부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척추에 병이 생겼습니다.

  의사의 권고로 휴양 차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런던에 갔을 때, 그녀는 어느 빈민굴을 방문했다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비로소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다.'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런던 빈민굴에서 봉사의 삶을 결단하고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한다는 헌신적 마음으로 75세의 전생을 마칠 때까지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리하여 시카고 빈민굴의 낡은 집을 사서 빈민의 탁아소, 가출 소녀의 숙소로 삼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그 유명한 헐 하우스(Hull House)입니다.

  그녀는 죽는 그 날까지 척추의 병으로 고생했으나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라는 20대 후반에 깨달은 삶의 목적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입니다. 인사동에는 골동품 상회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금당'이라고 하는 상회로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에 지금 이조 백자, 고려 청자 등 아주 값나가는 몇 점을 구해 놓았으니 있는 대로 돈을 준비해 가지고 어디로 나오라고 장소를 지정해 주었습니다. 이럴 때에 아니라고 하면 골동품 장사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있는 돈을 다 준비했는데 그때 돈 500만원이면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그때 서울 장안에 승용차가 그리 많지도 아니할 때입니다. 금당주인 부부는 승용차를 타고 기사를 데리고 약속한 장소에 갔더니 사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차를 놓고 들어오라고 합니다. 자기 집으로 들어갔는데 돈을 보자고 합니다. 돈 500만원을 보이니까 갑자기 칼을 들이댑니다. 그리고는 부산에서 자기 동생이 고등학교 미술교사인데 불러 올린 것입니다. 동생에게 모두 동여매게 하였습니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세 사람을 한 사람씩 찔러 죽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꼼짝못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돈은 모두 빼앗고 승용차는 공장에 보내서 십분 만에 완전히 분해 처리하였습니다. 뜰에 있는 꽃밭을 파고 묻어 버리고 다시 꽃밭을 멋있게 꾸몄습니다.

  감쪽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집의 내연의 처입니다. 그것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는데 어떻게 그 송장 위에서 살아가겠습니까? 밤에 잠이 오겠습니까?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몸은 계속 말라갑니다.

  남편이 보니까 아내가 이상합니다. 이번에는 아내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아내는 그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하겠습니까? 다급한지라 친정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고위 경찰 출신입니다.

  '너 왜 그러냐?' 사정 이야기를 하니까 가만있을 수 없어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붙잡혀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감옥에서 전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종이가 있는 대로 자기의 지나온 과정을 써서 나중에는 책을 냅니다. 그 사람은 결국 죽습니다. 그러나 책은 나옵니다.

  책을 보았더니 얼마나 인생을 지저분하게 살아왔는지 책값이 아까웠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가서 본전을 찾았습니다. 마지막 말이 '너를 죽이는 것이 나를 죽이는 일이었구나!'이였습니다.

  그 사람을 누가 죽입니까? 고발한 사람, 기소한 검사, 판결 내린 판사, 사형 집행한 형리가 아닙니다. 너를 죽였기 까닭에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죽이고 네 것을 빼앗으면 내가 잘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결단코 내가 사는 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너를 죽이는 것이 나를 죽이는 것이었다.'는 진리를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꾸어 말하면 너를 살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너를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은 그 자세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

  그리고 그물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던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혔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8)

  베드로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서 기적을 맛보고 나서 예수님을 '주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생이라는 고백과 주라는 고백은 천지차이입니다.

  선생은 가르치는 사람 정도입니다. 주라는 고백은 쿠리오스라는 고백인데 '당신은 나의 두목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두목에게 부하는 절대 순종입니다. 절대 복종입니다. 모든 생애를 다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은혜는 예수님을 보는 눈을 바꾸어 주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코크라는 곳에서 생긴 사건입니다. 빌딩 4층 창문에서 한 사람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밑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순간 모두가 이리 저리 황급하게 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4층에서 일하던 사람의 발판이 삐끗하면서 그 사람이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이들이 모두 몸을 피하며 놀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명이 꼼짝 않고 서서 그 사람이 떨어지는 방향을 응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달려가서 그 사람을 받았습니다. 순간 그 사람의 뼈가 부스러지면서 평생 불구가 되었습니다.

  떨어진 이는 평생 자기를 받아주고 불구가 된 그 사람을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둘 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여 준 이에게 일생 관심을 두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을 위하여 살아가겠다고 그 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은혜 받은 자의 자세입니다.



  ▶흑인 운동가 중에 말콤 엑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흑인 문학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말콤 엑스는 어려서부터 자기가 흑인이라는 사실에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기 검은 얼굴을 볼 때마다 비관하였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왜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검은 사람이 되었는가?'

  하루는 세수 비누로 하루 종일 검을 얼굴을 닦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얼굴을 희게 하여 보려고 무진장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 검은 피부는 희어지지 않았습니다. 비관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안에 들어앉아 아예 두문불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무한한 값진 창조물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은혜 받고 한 말이 있습니다. '검정은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창조물은 모두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검은 피부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자유 함을 얻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어깨에 두 날개를 단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 자기의 아팠던 경험을 되새기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은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꼭 하나 달라진 것은 그가 은혜 받은 것 하나 달라졌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면 자기가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나를 받아드리는 은혜, 나를 용납하는 은혜는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나폴레옹은 한 때 유럽 전역을 호령하였던 시대의 영웅이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패한 전쟁은 영국과 워털루 전쟁이었는데, 그 곳에서 패한 후 '센트헤레나' 섬에 갇혀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롭게 살고 있는 나폴레옹에게 신문기자가 가서 묻기를 '가장 행복하였던 순간은 어느 때였습니까?'

  나폴레옹은 눈을 지긋이 감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하기를 '전쟁 중이었지요.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가서 철모를 옆에 벗어 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순간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라고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최고의 학문인 탈무드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세상을 세 기둥 위에 세우셨는데  하나는 토라 기둥, 또 다른 기둥은 선행기둥, 그리고 예배기둥'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 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자리인 동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자기 굴로 향하게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어는 알에서 깨어 강에 놓으면 바다로 가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미국에 가면 폭포 위에서 연어를 부화시켜 놓으니까 폭포 아래로 떨어져 바다로 가서 살다가 돌아옵니다. 수 천 마리 연어가 폭포 물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관광 자원입니다. 장관입니다. 자기 고향으로 가려는 피눈물나는 노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을 떠날 때에는 목에 조그만 흙 자루를 걸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흙을 간직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으로 돌아 갈 것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살기에 고향을 늘 생각하며 사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다가 부자가 된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도 그렇게 애쓰고 힘써서 번 돈이 아까웠습니다.

  그는 죽을 때 유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사놓은 땅을 모두 팔아라. 그리고 내가 은행에 넣어둔 돈도 다 찾아라. 그리고 내 무덤에 나와 함께 묻어다오'

  유언이니 할 수 없었습니다. 수십 억 원을 무덤에 넣고 매장하려 할 때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친구가 오더니 매장할 때 당좌 수표 한 장에 수십 억 상당의 수표를 써서 무덤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돈은 내게 주시요' 그는 현찰을 다 갖고 수표 한 장을 시체와 함께 파묻었습니다.

  나그네 인생은 이 땅은 다 사라질 것임을 알고 저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시골길을 한 나그네가 가다가 길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정처 없이 헤매던 중에 숲 속에 불빛이 보여서 찾아 가 보았더니 고래등같이 큰집이었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틈으로 주인이 살짝 얼굴만 보이며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길이 어두워져서 갈 수가 없으니 하룻밤만 묵어가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 집은 여관이 아닙니다. 여관을 찾아보시지요?'

  그 때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당신도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언젠가는 이 집도 다른 사람이 차지 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 집을 사용할 동안만 소유주이지 당신도 지나가면 이 집은 다른 사람이 사용할 것입니다. 당신도 이 집에 나그네입니다.'

  이 말을 듣고 주인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 나그네를 집안으로 모셔 하룻밤 자고 가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그네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소유주가 아니라 사용 주입니다. 이런 철학을 나그네 인생은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 갔습니다. 가서 세 번 놀랐다고 합니다.

  하나는 저 사람은 천국에 갈 줄 몰랐는데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또 그 사람은 꼭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천국에 갈 줄 꿈에도 몰랐는데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천국이 주어진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이 주어진 것도 축복일고 은혜 중 은혜입니다. 



  ▶영국의 덜행 지방에 있던 탄광에서 갱이 무너졌습니다. 164명이 생매장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시체가 발굴되었는데 발굴현장에서 큰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우리는 대단히 유쾌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준비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산소부족으로 죽는다는 것을 알고 함께 모여 기도회를 갖고 준비하고 이 글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을 믿고 기쁨으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 힘이 부활이 주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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