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모음(스티븐 코비 박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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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모음(스티븐 코비 박사 외)
▶리더십연구 분야의 유명한 연설가인 스티븐 코비 박사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자신의 책에 자기의 출가한 딸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요즘 너무 속상해요. 물론 아이들을 사랑하기는 하는데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시간을 다 뺏기고 있어요.'
'딸아, 그냥 마음을 편히 가져라.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즐기려무나. 너만큼 아이를 사랑하고 돌볼 사람이 없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란다. 시간 관리 같은 것 신경 쓰지 말아라. 달력은 잊어버려라. 다만 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를 즐기도록 해라. 네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고 벽에 걸린 시계는 신경 쓰지 말아라.'
마지막 이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지만 나침반은 방향을 제시합니다. 즉 코비 박사는 그의 딸에게 시간관리보다 중요한 것이 인생의 방향이니, 그 방향을 바로 잡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충고를 하였던 것입니다.
▶중국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자(莊子)가 하루는 활을 가지고 밤나무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밤나무 숲 남쪽에서 날아온 까치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장자가 활을 겨냥하여 까치를 쏘려고 하는데, 까치는 정신 없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까치는 제 앞에 있는 큰 왕거미를 잡아먹으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거미는 자기를 노리는 자가 있는 것도 모르고... 또 밤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열심히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장자는 겨누었던 활을 쏘지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장자는 집에 돌아와 석 달 동안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밤나무 숲에서 생겼던 탐욕의 문제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꼭 같은 시선으로 장자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또 다른 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마음속에 깊이 생각할 때 이런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유머/죽어 지옥에 간 흥부 내외와 놀부 내외가 염라대왕 앞에 섰습니다. 염라대왕은 아주 단호하게 '흥부와 놀부는 들어라. 지금 너희들 앞에 똥통과 꿀통이 있느니라. 각자 어느 통에 들어가겠는고?'라고 말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욕심 많은 놀부가 잽싸게 먼저 '제가 꿀통에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염라대왕은 할 수 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놀부는 꿀통에, 흥부는 똥통에 들어갔다 나오너라.' 두 사람은 염라대왕이 하라는 대로했습니다. 그랬더니, 염라대왕이 즉각 또 명령했습니다.
'너희 형제는 서로 마주보고 서거라. 그리고 서로 상대의 몸을 깨끗하게 핥아라.' 놀부는 죽을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에 다음은 아내들 차례가 됐습니다. 염라대왕은 '흥부 아내와 놀부 아내는 각자 어느 통에 들어갔다 나오겠는가?'
놀부 아내는 얼른 놀부를 처다 보았습니다. 놀부는 '똥통에 들어가라'는 눈짓을 노골적으로 아내에게 했습니다. 남편의 눈짓을 받은 놀부 아내가 행여 흥부 아내에게 뒤질 새라 급히 말했습니다.
'염라대왕님, 저는 똥통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하지 염라대왕은 '그러냐? 그러면 그리 하든지.' 짐짓 말한 후에 즉시 명령했습니다.
'놀부 아내는 똥통에, 그리고 흥부 안내는 꿀통에 들어갔다 나오너라.'
두 여인은 염라대왕의 명령대로 했습니다. 염라대왕은 '지금부터 흥부와 놀부는 각자 자기 아내와 마주 서거라. 그리고 각자 자기 아내의 몸을 깨끗이 핥아라.'고 엄히 명령했습니다. 불쌍한 놀부는 기절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어령씨가 그의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왜 교회에 가는가?'라고 비난조로 묻는 사람들이 있지요. '당신은 지성인인데 집에서 찬송가 부르고 성서 읽고 기도하면서 책 읽으면 되지 무엇 때문에 사람들 앞에 나서서 예수 믿는 티를 내느냐?'는 겁니다.
그럴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죠.
'배가 고프면 어디에 가지?' '식당에'
'뭔가 알고 싶을 때는?' '도서관에 가면 되지'
'심심하면?' '그야 극장가서 영화 보면 돼'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
'그럼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갈증나고 놀아도 심심하고 배워도 답답하면 어디를 가나' '그건 뭔데?'
'배고픈 것처럼, 갈증나는 것처럼, 영혼이 굶주려 있을 때.' 그러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 때 가는 곳이 교회란 말이야.'
▶미국 시카고의 한 빈민가에서 목사와 이발사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지저분하고 악취가 풍기고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발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로 목사님이 증거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런 것을 보시고 내버려 놓습니까?' 그 목사님이 대답을 안하고 한참 그 이발사와 걸어가는데, 마침 청년 한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머리를 산발로 하고 수염을 이렇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여보세요. 왜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있는데 저 사람은 머리를 저렇게 늘어뜨리고 수염을 저렇게 길게 기르고 추잡하게 다닙니까?'
그 이발사가 허허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게 안 오니까 그렇지요. 이 친구가 내 이발소에 왔다면 내가 미남으로 만들어 놓지요' '아 그래요?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한지 압니까? 하나님께 안 오기 때문에 가난한 겁니다.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을 충심으로 섬기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했으면 모든 것이 더해졌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인이 남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 나, 어머니, 그리고 아들 셋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건져줄 거예요?'
남편은 한참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어머니부터 건져 드려야지.' 부인은 불만스러웠지만 반발할 처지가 아니라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요?' 남편은 한참 또 생각하더니 할 수 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들을 건져줘야지, 뭐'
그랬더니 부인이 속이 상해서 자기가 그런 존재밖에 안 되냐고 따졌습니다. 그 후 부인은 스스로 고민에 빠졌고 나중에는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혼자 괴로워하다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의사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한참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부인,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수영을 배우시죠.'
누구나 다른 이들이 자기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이야기입니다.
▶평북 정주에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보고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그 청년은 미션계인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고당 조만식 선생입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사재를 털어 오산학교를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고당 조만식 선생이 오산학교를 찾아와 교사가 되기를 자청했습니다.
그러자 남강이 고당을 반기며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잘 오셨소! 이제부터 고당이 이 학교를 맡아 주시오.'
'고맙습니다. 힘껏 일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요?'
'다름이 아니라 절대로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입니다.'
고당은 남강이 사재를 털어 세운 학교에 월급을 받고 취직하러온 것이 아니라 나라의 인재를 육성하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먼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민족의 인재을 양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돌아보지 아니한 고당 조만식 선생은 우리 민족의 참된 목자였습니다.
8.15 광복을 맞이한 후 북쪽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천지가 되자 거의 많은 애국지사들이 서울로 내려왔는데, 조만식 선생만이 남았습니다.
고당의 이러한 인격을 아는 이승만은 김구와 조만식 그리고 자신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편지를 써 젊은이 편으로 평양의 고당에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자 고당은 말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민중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만 가느냐? 내가 이 평양에 머물러 있어야 공산당이 이 민중을 제 마음대로 못하지 하지 않겠느냐? 세간에는 면목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이북 동포를 버려 두고 나 혼자 월남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래도 이 민중을 버려 두고 떠날 수 없는 노릇이로다. 내가 떠나서는 안 된다. 나는 여기서 희생당해도 괜찮다. 자네들은 어서 속히 내려가게.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은 남으로 내려보내도록 하겠네.'
조만식 선생은 북한 민중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참으로 성스러운 결단이요 순교자다운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민족의 수호 신자였고 안식처였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한 십자가를 지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대한 목자가 우리의 역사에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래 전 어떤 미국 선교사가 중국에 와서 전도하는데, 때마침 이름 모를 전염병이 유행하여 수많은 중국인들이 희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는 병균을 유리병 속에 담아서, 면역체를 만들기 위해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려 할 때에, 검역소 직원들이 방역조치를 위해서 철저하게 승객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선교사는 병균을 자신의 입 속에 털어 넣고 유리병은 바닥에 버렸습니다.
조금 뒤에 그의 온몸에 병균이 퍼지면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사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몸에는 지금 중국에서 번지고 있는 전염병이 감염되었으니 이 병균을 뽑아서 면역체를 만들어서 중국에 보내어 많은 사람을 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선교사의 모습이 바로 선한 목자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중국의 양떼들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의 '독수리와 닭'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이 인근의 산에서 발견한 독수리 알을 암탉이 계란을 품을 때 살짝 집어넣었습니다. 드디어 계란이 병아리로 부화할 때 독수리도 부화했습니다. 이 새끼 독수리는 자기도 병아리라고 생각하여 병아리와 똑같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독수리 하나가 닭장의 상공을 멋지게 맴돌다 지나갔습니다. 그 멋진 모습을 새끼 독수리가 보며 그 큰 독수리의 모습이 자신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새끼 독수리는 '나는 저 큰 독수리와 닮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나는 내 모습이 병아리하고 왜 닮지 않았는가 고민했었는데! 사실은 나는 창공을 날고 있는 저 어마어마한 독수리와 같구나!' 라고 생각하고 비로소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자는 참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남'에게로 열린 존재입니다. '남'을 향하여 자신을 열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남'과의 관계에서 '나'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절대타자인 하나님을 발견할 때 참된 '나'를 발견하고 참된 '나'로 살 수 있습니다.
▶최인호의 '사랑의 기쁨'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20대 후반에 이혼하고 30년 동안 홀로 살던 어머니가 죽자 어머니의 유품을 챙기다가 편지하나를 보고 어머니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딸이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그 딸은 어머니가 20여 년 동안 사랑했던 그 남자를 만났습니다. 어머니와 그 남자 두 사람은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고, 두 사람이 재혼을 하는데 방해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남자는 중후한 인격을 가진 대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이혼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둘은 헤어졌고 10년 간 어머니가 죽기까지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편지도 전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에게 방해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데도 말입니다.
딸은 어머니가 사랑했던 독신 교수에게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때 그 교수는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써서 보낸 어머니의 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여자로 당신을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저는 어머니로서 제 딸을 사랑하는 사랑이 더 큽니다. 저는 선생님보다 제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 곁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제 전화도 하지말고 편지도 하지 마세요'
그 딸은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혼했다고, 그래서 딸의 인생을 망쳤다고, 또 아버지가 외로움으로 병들어 죽게 했다고 대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달라졌습니다. 빛이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딸을 위해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과 관계를 끊고 딸을 위해서 살았던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대단히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안일과 육신의 쾌락과 세상의 행복을 포기했습니다.
어머니는 교수와의 사랑이 고귀했지만 그 딸을 더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연인에게 달려가지 못하게 했고, 그리움과 외로움의 세월을 견디게 했습니다.
▶어느 음악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로 된 가난한 음악가는 새 예복을 장만할 여유가 없어서 전부터 입어오던 낡은 예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지휘 도중에 그 낡은 예복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연주를 할 때는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휘자는 한 곡이 끝나자 그 낡아서 찢어진 예복을 벗어야만 했습니다.
셔츠 차림으로 지휘하는 그를 향하여 사람들은 킬킬거리며 조롱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주위가 소란해도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열심히 지휘하였습니다.
이때 맨 앞에 앉아 있던 어느 신사가 조용히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음으로써 지휘자처럼 셔츠 차림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웃음을 멈추고 하나, 둘 전부 웃옷을 벗었습니다.
그 결과 그 날의 연주는 그 어떤 연주회보다 더욱 감격적이었고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감싸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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