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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행복에 대한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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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행복에 대한 예화



거짓행복 참 행복



많은 사람들이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고, 물질이 많으면 행복도 이에 비례할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위와 권세와 물질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정작 있어야할 행복감이 거기에 없을 때 커다란 실망을 안고 좌절해 버립니다.



또 미래에 행복이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녀들 대학, 대학원까지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를 보내면 행복이 다가오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막상 그때가 되면 허무와 공허만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좀 더 많은 재산을 모아 마음에 드는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치장을 하면 행복이 다가오겠지 라고 믿다가 그것이 실상 이루어지면 얼마 되지 않아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결코 그 집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자기가 입은 옷의 호주머니 안에 숨어있 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행복은 절대 행복해지기로 결심한 사람에게만 얻어지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서 얻은 행복만이 참 행복이요, 영원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기쁨



삿뽀로의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떤 한 사람의 성도와 목사가 마음을 합하여 시내의 북부에 전도처가 주어지도록 매일같이 기도를 계속해왔다. 북해도에서 여름이면 또 몰라도 겨울에 아침마다 난로도 피우지 않고 추위에 떨면서 이 두 사람은 새벽 5시만 되면 기도했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러다가 그 성도는 신경통에 걸려서 두 팔다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더 이상 기도할 수 없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기도회가 있는 날이었는데 성경을 읽은 다음에 목사님께서 “인간의 힘이 다하여 이제 이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됐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후에 교인들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마친 후, 한 사람의 성도가 목사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성도는 “사실은 저는 다른 어떤 교회의 성도입니다. 저는 삿뽀로 북부에 85평의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15평의 집을 새로 지으려고 하는데, 그 집을 전도하는 장소로 사용해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목사도 교인들도 이 말에 꿈인가 하고 놀랐다. 이 교회는 돈도 없는 가난한 교회였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전도 처를 가지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 소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알지 못하는 성도에 의하여 전도처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성도들은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고 한다. 이 일이 이루어진 배후에는 참으로 345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던 것이다. 만일 10일이나 20일로 기도를 그만두었더라면, 만일 한 달이나 두 달 만에 기도에 지쳐 버렸더라면. 아마도 이러한 기쁨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쁨2



기쁨과 위로는 다릅니다. 위로는 밖에서 들어오고 기쁨은 안에서 솟아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상을 당한 사람이라도 여러 가지로 위로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솟게 할 수는 없습니다. 위로는 외적 한경에 근거를 두고 있고 기쁨은 내적소유와 신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지였던 소년이 왕자인 것이 밝혀지면 그 기쁨은 왕자로서의 신분과 소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안에서 솟는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바로 이 거지 왕자의 기쁨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는 지옥 영벌을 받을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누가 기뻐하라고 해서 기뻐하는 위로의 기쁨이 아니고 스스로 속에서 솟아나오는 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화려한 장식과 감각적인 예배 순서를 통해서 위로의 기쁨을 주고 있는 것은 크게 불행한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일종의 정신적 장애, 즉 종교 중독증에 걸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의 기쁨에 유록 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더운 여름 날 시원한 나무 그늘에 취하여 한 세월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을 맞이하게 되는 베짱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속에서 샘솟는, 신분과 소유의 영원한 기쁨의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기쁨을 빼앗김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베드로전서 1:8)



가난에 쪼들린 어머니는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자신은 굶주릴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잠도 자지 않고 공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애국심이 있는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정과 안전을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바로 믿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영적인 복지를 무시함으로써 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루이스씨는 청소년기에 기독교 가정교육을 저버리고 수년 동안 세련된 회의론자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강한 갈망이 자주 그를 사로잡곤 했습니다. 그가 생각하고 연구함에 따라 이 열망은 사실은 깊은 영적필요의 증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나님께 굴복했고, 그의 자서전의 제목처럼 "기쁨으로 인해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그 결정적인순간이 올 때까지 그는 하나님의 왕국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가 아직 하나님의 왕국밖에 있는 동안에 죽었더라면 그는 영원히 천국의 기쁨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동전 한 잎의 교훈



청백리상을 받았던 어느 가난한 공무원을 취재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온갖 불의를 다 저지르던 사람들이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외치던 시절이라 그들이 강조하는 `청백리'라는 단어조차 식상하던 때였다. 처음엔 취재의 목적이었으나 그 청백리의 따스한 가슴이 내게 통하여 가깝게 지내는 동안 귀중한 교훈을 하나 얻게 되었다.



주로 나환자와, 구두를 닦는 청소년들에게 봉급의 상당부분을 털어 넣었던 탓으로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궁핍에 시달렸다. 청백리도 좋지만 가정부터 제대로 꾸려야지 않겠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가 오히려 되물었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을 남에게 주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기쁨을 알겠습니까? 지하도를 지나갈 때 계단에 엎드려 있는 아이들에게 동전 한 닢을 쥐어줘 보세요. 그러면 알겁니다." 처자식을 굶기지는 않는다며 말하는 투가 너무나 담담한 음성이었다.



그 후 나는 지하도를 내려가다가 불현듯 그의 말이 떠올라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동전 한 닢을 어물쩍 내밀어 보았다. 행인들의 눈길이 그렇고, 겨우 동전 한 닢이라는 염치도 그러하여 스스로 얼굴이 달아올랐던 게 사실이다.



가난이란 게으름 탓만 아니라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돈이란 가지고 있을 때 편리한 물건일 뿐이지 이상이나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내가 동전 한 닢을 내밀며 낯이 간지럽던 그 기분은 솔직히 말해 내 행동에 자신이 없고 턱없는 위선이었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선이든 아니든 횟수가 거듭되자 내게 은근히 젖어오던 그 기쁨,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지폐가 아니면 아이들도 시답잖게 여기는 요즘 세상에 동전 한 닢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여 그렇게 즐거울 수 있으랴.



등산이나 낚시의 즐거움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동전 한 닢의 기쁨도 경험 없는 이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청백리가 무슨 돈으로 외식이냐"는 이죽거림에 괴롭다던 그의 곤혹스런 표정이 그래서 더 눈에 선하다.



무지개 같은 행복



마릴린 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래에도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행복을 찾고, 찾고 또 찾았지만 완전한 행복을 잡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행복은 살짝 지나갑니다. 무지개처럼 지나갑니다. 붙잡으면 현실이 아닙니다. 모래처럼 새어 나가 버립니다. 그것은 환상이고 환영(환영)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말은 만고의 인간이 배워야만 할 지혜입니다.



인생의 종말에서 나폴레옹이 한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 헛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전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세계를 정복하고 정복했지만 나의 왕국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예수는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사랑의 왕국은 날로, 날로 번져 가지 않는가? 그와 우리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영웅들과도 다르며 성자들과도 다르다. 이상한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 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5-7)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사랑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그 사랑이 깊고 신뢰할 만한 것일수록)엔돌핀이 샘솟고 깊은 행복감에 젖어 든다고 한다. 그럴 때는 몸과 마음의 모든 상처가 치료된다.


비로소 참된 의미의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의 위마 의과 대학에서 실시한 실험의 결과이다.



{대학 병원에 한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다. 이 강아지는 사람들로부터 무척 사랑을 받았다. 누구나 이 강아지를 귀여워했고 가까이 오면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먹을 것을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 의사가 이 강아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다. 병원 내의 모든 사람에게 부탁하여 일주일동안 이 강아지에게 쏟던 사랑의 표현을 중단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사람들은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반가이 다가와도 모른척하고 이상히 여긴 강아지가 더 반가이 따라 다니면 귀찮다는 듯이 발길로 툭 차버리기도 하는 등 애정을 끊어버렸다. 일주일 후에 의사는 이 강아지의 혈액을 검사하여 놀라운 결과를 밝혀냈다. 강아지의 혈액이 탁하고 아드레날린이 증가하여 질병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후 의사는 사람들에게 일러서 이전보다 더욱 사랑해주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고 일주일 후, 강아지의 혈액을 다시 검사한 결과 아드레날린의 양이 현저하게 줄고 질병도 떠나고 건강한 상태인 것을 발견했다.



-이상구 박사의 강연 중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의 편지이다.



"나 여호와가...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예레미야 31: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예수께서...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38,39)



우리는 이 사랑을 받고 전인적 행복을 영원이라는 시간동안 (이 무한대의 시간은 실상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리 실감나지는 않지만 하루살이의 삶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누리기 위해서 욕심을 포기해야 한다. 왜 그럴까?



{불량식품을 사 먹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함.}



하나님 앞에 모든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라. 그리고 주시는 선물을 받으라. 집착과 헛된 수고로 인한 피곤에 더 이상 시달리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 행복자의 삶을 살지 않겠는가?



무엇을 위한 수고요


무엇을 위한 바쁨일까


종일 쉬지 못하고 애씀이



어두운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영혼은


마시고 또 마셔


취하도록 마신 고배의 잔



그러다가 갑자기


깊은 잠 들어버리면


그 때는 어떤 셈을 할까


엄벙덤벙 살아버린 세월 앞에



주여 도우소서.


내세를 위한 준비도 없이


허우적이는 손


방황하다 찾으면


기다리는 손이시여.



-함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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