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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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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하여


 


 


 




가벼운 십자가


한 미국인 부부가 독일의 오베라머가우에서 유명한 수난극을 관람했습니다. 공연 후에 그들은 예수 역을 한 배우를 만나려고 무대 뒤로 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남편은 배우가 극중에서 지고 갔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사업가인 그 남편은 부인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내 모습을 찍어 줘요." 그는 등을 구부리고는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려 했으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굴에 땀을 흘리며 낙담하여 그는 배우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속이 빈 것인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무겁죠?" 배우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거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역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야고보와 요한처럼 나는 그리스도의 잔은 마시지 못하면서 그분의 옆에 앉게 해 달라고 바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헌신적인 크리스천을 만나게 되면 나는 내가 속이 빈 십자가를 지고 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그리스도의 잔을 -고결함과 뜨거운 동정심과 용기 있는 신앙고백과 섬김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는가?"



가장 고귀한 희생의 대가


19세기의 유명한 전도자 무디가 탄광촌을 방문하여 책임자에게 구원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책임자는 믿기지 않는 듯 말했습니다.


"그거 구원이 너무 싸군요.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니 값이 너무 싸단 말입니다. 뭔가 값이 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무디는 탄광촌 책임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당신, 오늘 갱에 들어갔습니까?"


"네"


"얼마나 깊이 내려갔습니까?"


"수백 피트나 되지요."


"어떻게 내려갔습니까?"


"그건 간단하지요. 버튼만 누르면 승강기가 올라오고 내려가니까, 그걸 타고 내려갔지요."


"그것밖에 하신 일이 없습니까?"


"그럼요. 석탄 회사가 이미 많은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해 놓았으니 저는 그저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걸요."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이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상에서 대신 죽게 하셨으니 우리는 그저 그 공로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십자가의 승강기를 놓으셨으니 주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의 버튼만 누르시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는 너무 싼 것이 아니라 가장 고귀한 희생의 대가였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한때 남침례교 신학대학의 학장으로 계셨던 엘리스 풀러 박사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성지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 날 사람들이 박사에게 말하기를 “풀러 박사님, 일요일 아침에는 갈보리로 가게 될 텐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지점에서 박사님이 우리에게 설교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박사는 설교를 해야 할 책임감 때문에 그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새웠다고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지만 도무지 합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곳에서 설교를 할 자격이 도저히 없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잠도 자지 않고 마태복음의 십자가 고난의 기사를 그대로 암송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갈보리로 걸어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입을 꼭 다물고 있었고 모든 것이 죽음처럼 고요했습니다. 그가 이야기할 시간이 되자 풀러 박사는 얼굴을 하늘 쪽으로 돌리고는 십자가의 고난을 묘사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흐느끼는 소기가 들렸습니다. 낭송을 마친 박사는 “저곳이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위해 돌아가셨던 곳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작 왓트의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합소서. 머리와 수족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나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사람들이 갈보리에서 발길을 돌렸을 때 그들의 마음엔 만약 목숨이 천 개가 있다면 그의 보혈로서 그들의 구원을 사실 예수님을 위해 천 개의 목숨이라도 다 드리기 원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마음이십니까?



갈보리 언덕


로버터 G.리 박사는 처음으로 성지를 순례했을 때의 이야기를 즐겨하곤 했습니다. 갈보리 언덕을 보자 그는 너무나 흥분된 나머지 뛰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오르던 일행은 금방 뒤처져 버렸습니다. 한참 후 그를 따라잡은 안내인이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전에 여기 와 보신 적이 있으신 모양이지요?" 잠시 동안 고요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리 박사는 경외감에 찬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그렇지요, 약 2천 년 전에 여길 와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약 2천 년 전에 그곳에 갔었습니다. 우리는 다 사형선고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감춰진 보화


1971년 아폴로 15호로 달에 다녀온 제임스 어윈의 간증을 들어본다.


"우리가 발견했던 것은 하얀 돌이었습니다. 영국의 과학자 패트릭 모어(Dr.Patrick More)에 의해 오래전에 '창세기 돌'로도 명명되어 있던 그 돌이 왜 그토록 중요했기에 우리에게 그 돌은 찾아오도록 시켰을까요? 저는 그 돌을 발견한 것은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여러분들이 '진짜 돌'을 찾으시길 기도합니다. 저는 감추인 보화 비유를 말할 때 곧잘 이 하얀 돌의 모형을 보여드리곤 합니다. 이 돌을 구하기 위해 왜 그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였을까요? 과학자들에 의하면 그 돌은 달의 산과 표면의 성질을 모두 알아낼 수 있는 표본이기 때문에 귀할 수밖에 없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한 돌 - 감추인 보화 - 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인생의 기초석이요 살아있는 산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분이야말로 내 인생에 진정한 의미를 가져다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값진 평화의 보혈


어느 시골에 물질적으로 유복한 가정이 있었다. 남편은 어찌하든지 돈을 벌고 물질로 성공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아침 일찍 들에 나가면 저녁 늦게 들어와 잠자리에 드는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다정다감하여 예술을 논하고 여행을 즐기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그런 생활에 불만족스러워 남편에게 함께 관광을 하자고 늘 간청을 했지만 남편은 무뚝뚝한 태도였다. 그런 남편의 태도에 아내는 탄식을 하다못해 소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부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고 말았다. 맹장을 수술한 뒤에도 부인은 회복되지가 않아 마침내 의사는 사형선고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부인이 살려는 의지가 없어 극도의 빈혈로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자기의 팔을 걷고 수혈을 해주라고 의사에게 요청했다. 다행히 같은 형의 피였지만 시골 병원이었으므로 남편의 팔에서 아내의 팔로 직접 수혈을 해야만 했다. 남편이 말이 없는 가운데서도 자기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속에 온갖 미운 감정을 씻어낸 뒤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흠도 없고 죄가 없는 독생자 예수께서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를 화목 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그 피를 가슴 속에 받아들일 때, 우리 마음속에는 그 무엇을 주고도 살수 없는 평화가 넘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남편이 부인에게 말없이 수혈을 하였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때로는 재미가 덜하기도 하고 단조롭기도 하며 고통과 고난이 뒤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값진 평화의 대가가 기다린다면 우리도 그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고난 뒤의 영광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편23:5)라고 찬양 했습니다.


시련과 고난은 우리에게 침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 그 아픔으로 인해 땅을 치고 통곡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바로 그 고난과 상처의 현장에서 진수성찬을 성도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계 어느 교회보다 능력 있고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가 된 것 6,25전쟁이라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얻은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난, 그 고통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 없이 부활과 영원한 영광, 만왕의 왕으로서의 보좌를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시련과 고난을 당하거든 원망하거나 불평하며 탄식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수성찬이 베풀어지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현장에 계신 주님


어떤 초등학생이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권유에 의해서 주일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그 학생은 교회에 다녀오다가 건널목에서 기차에 치어죽고 말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자 너무너무 화가 나서 예배당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을 나오라고 해서 목사님이 나오시자 내 아들이 죽을 때 하나님이 어디 있었느냐고 따졌습니다. 목사님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더니 그가 어느 정도 진정하자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가 죽을 때 거기 계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깊은 내용이 담겨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죽는 피 묻은 고난의 현장에 계셨습니다. 그러한 아픈 상처를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그중에 맨 마지막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헬라 원어로는 '테텔레스타이 '라고 하는데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헬라의 도시를 발굴해 냈을 때 옛날의 세금 영수증을 발견해냈는데 거기에 바로 '테텔레스타이'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금을 지불했다, 지불이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신 고로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부터 죄 값을 다 받으시고 하나님의 책에서, 하나님의 장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지워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우리의 죄를 그렇게 멀리 옮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재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 10:15-18)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고난절의 묵상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2-3) 로 이어지는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고난의 메시아를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고난이 한 번 크게 이루어질 것에 대한 우려와 이 사건의 심각성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예언은 드디어 적중했다.


예수가 메시아의 이름으로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시던 날 밤의 정경을 보라. 눈물겹게도 그는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베들레헴 주변에는 피바람이 불어 헤롯 임금의 미친 노름에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떼죽음을 했었으며 이 과정에서 예수는 애굽으로 피난을 했었다.


그리고 30여년, 갈릴리에 모습을 드러낸 메시아 예수는 친구 같은 제자들 몇을 모으고 때로는 수만 군중 앞에서 하늘나라를 말하기도 하나 어떤 때는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도 뿌리치고 광야로 나가거나 산비탈 바위틈으로 몸을 숨기기도 했었다.


요한복음 6장 기록 부분부터 유대인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 예수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데 저들의 주요 쟁점이 '사람으로 난 자가 하나님 아들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요한복음 6장에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하시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하는 결정적인 도전을 한다.


요한복음 6장의 유대인들은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저 사람이 미친 게 아닐까? 우리가 어떻게 자기 생명을 떡이나 포도주처럼 내 놓겠다는 것인가


당시 유대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의문점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호기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는 유대교 당시의 수준을 뛰어넘을 영웅도 성자도 나오지 못한다.


예수는 유대인들과 격렬한 싸움을 한다.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었으나 저들은 모두 자기 확신으로 단단히 무장된 사람들, 유대인들 중에서 바리새파의 오기는 세상이 알아주는 터였으니 저들이 예수를 죽이겠다고 결심을 한 이상 예수는 죽게 되어 있었다.


예수는 죽음이 무서워서 지름길을 찾을 마음 추호도 없다. 요한복음12장은 헬라인들이 예수를 죽음에서 건지고자 하는 지혜를 짠 것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주지만 예수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하여 자기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길은 골고다로 뚫려 있다. 그 길이 지금은 죽음일 뿐이지만 제3일은 아침의 생명을 약속 받았기에 예수는 담대하게 간다.


그 누가 예수의 길을 막을 수 있으랴,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하면서 달려가는 골고다는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가능의 땅이었다.


성공의 길은 가기 어렵다. 그러나 골고다는 패배의 길이요 빼앗기는 길이요 약하여 무너지는 길이다. 30년 장년의 알몸뚱이가 여러 군중 앞에서 공개되었고, 그 수치와 함께 당하는 고통은 사지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었다.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하나님의 침묵>, 아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고 관계를 단절시키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그리고 이어지는 무덤의 이틀 밤, 제3일의 아침까지 예수는 무덤이요 주검이었다. 아, 견디기 힘든 고난의 밤이여!



광야의 구리뱀과 예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할 때 불 뱀을 보내서 물어 죽게 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쫓아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쳐다보게 했다.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았다. 이것은 예수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예수의 십자가의 반형적 그림자인 것이다.(요 3:14)


구리 뱀은 이스라엘의 불신과 범죄의 형벌과 저주의 상징이다. 뱀과 예수는 정반대의 표상인데 예수는 우리 대신 죄인 되어 대신 형벌을 받아 죽으신 분이다. 쳐다 보는 것과 믿는 것이 대형이 된다. 뱀에게 물린 사람들에게 연고나 약을 바르라고 하지 않고 뱀잡기 운동을 벌이라고 하지 않고 기도하거나 모세를 쳐다보라 하지 않고 장소를 옮기는 운동을 하지 않고 누구든지 아무리 죽게 되더라도 어디서 어떤 자세 즉 누워서든지 서서든지 쳐다만 보면 나았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 자녀가 되고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반형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구원 확신


독일의 유명한 화가 스턴벅이 한 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연구했다. 절반쯤 그린 후 한 번은 거리에 나가 다니다가 어떤 여자를 만나는 순간 그 여자를 그릴 생각이 났다. 그녀에게 허락을 받고 자기 방에 데리고 와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이 여자가 "저 사람은 저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보니 필경 죄를 많이 지은 모양이군요."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화가는 깜짝 놀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 분은 죄가 없으신데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못 박힌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가 듣더니 "정망 그렇다면 그 분이 당신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셨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스턴벅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으심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한 죽음이 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 구원의 기쁨 가운데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스도 사랑의 강권


독일의 유명한 화가 스턴벅이 한 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성경을 연구했다. 절반쯤 그린 후 한 번은 거리에 나가 다니다가 어떤 여자를 만나는 순간 그 여자를 그릴 생각이 났다. 그녀에게 허락을 받고 자기 방에 데리고 와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잠시 후 이 여자가


"저 사람은 저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보니 필경 죄를 많이 지은 모양이군요."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화가는 깜짝 놀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 분은 죄가 없으신데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못 박힌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여자가 듣더니 "정망 그렇다면 그 분이 당신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셨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스턴벅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 간절히 기도를 시작했고 마칠 때까지 눈물로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왜 보배로운가?


1) 그 피가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에 .................. 벧전 1:19


2) 그 피가 우리를 가깝게 이끌었기 때문에 ........... 엡 2:13


3)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내기 때문에 ............. 계 1:5


4) 그 피가 평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 골 1:20


5) 그 피가 의롭게 하기 때문에 ...................... 롬 5:9


6) 그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기 때문에 ... 요 1:7


7) 그 피가 심판의 날에 담대함을 주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의 피 이외에는 지상에 아무것도 남겨둔 것이 없다.



내가 너 대신 죽었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한 꼬마가 동화 테이프를 즐겨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가 내 대신 매를 맞았다"라는 제목이 붙은 테이프를 가장 즐겨 들었습니다. "그가 내 대신 매를 맞았다"라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잠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실이 하나뿐인 어느 시골 학교에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어린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어린 학생은 어느 날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학생의 도시락을 훔쳐 먹다가 선생님께 들켜 매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 점심을 도둑질 당한 큰 학생이 점심을 훔친 나이 어린 학생을 대신해서 매를 맞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대신해서 매를 맞았습니다. 그일 이후로 어린 학생은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도 우리를 대신해서 매를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당신을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당신은 이 사실에 대해 얼마나 감격하고 계십니까?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 저희를 향한 주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당신은 요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손의 못 자국, 허리의 창 자국, 머리의 가시관 자국, 모두 당신을 향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다.



내가 자네 대신 지불하겠네


대학 친구인 두 젊은이가 같이 졸업하고서 자신들의 이름을 떨치려고 세상으로 나섰다. 한 친구는 유명한 판사가 되었고, 다른 친구는 사업가가 되어 많은 부를 모았다.


사업가가 된 친구는 증권에도 손을 대어 짭짤한 재미를 보았지만, 어느 날 운 나쁘게도 주가가 폭락하여 모든 것을 다 날려버렸다. 그래서 과거의 위치를 다시 회복하고자 많은 돈을 횡령하였다는데, 그만 그 일이 발각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죄상을 인정하였고 판사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바로대학시절 함께 공부했던 옛 친구였다. 법정 안은 온통 과거의 우정이 판사의 선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는지에 대한 추측으로 술렁거렸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할 때, 장내에는 방청객들이 숨을 죽이고 판결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판결 내용은 법이 정한 가장 무거운 벌금형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실의에 빠진 피고인이 법정을 막 떠나려 하자, 판사인 옛 친구는, 옛 친구는 자신의 법복을 벗고 피고인에게 달려가 그를 얼싸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친구여 내가 자네 벌금을 지불하겠네."


우리는 죄악 된 행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받고 정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예수께서는 그의 값비싼 보혈로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받으셨다.



떨어진 인부를 구한 양


노르웨이에 있는 한 교회의 탑에 어린양의 조각이 있다.


이 조각이 세워진 경위는 이렇다. 사람들이 교회를 처음 짓고 있던 어느 날 높이 세워진 디딤대 위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가까이 있던 인부는 떨어진 동료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급히 현장으로 가보니 뜻밖에도 떨어진 사람은 가벼운 상처만 입을 뿐 살아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인부는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양떼 위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양떼 위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양들 몇 마리가 깔려 죽고대신 이 사람들은 살아난 것이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을 위해 어린양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대신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이사야 53:5).



매품팔이


역사의 기록이나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돈많은 사람이나 세도가 당당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자기가 맞을 매를 종이나 매품팔이 하는 가난한 사람들로 대신 맞게 하고 그 삯을 주었다고 한다. 주로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선비들이 대신 매를 맞아주고 돈푼이나 얻어다가 가족의 끼니를 이었다고 한다. 죄의 삯이 곤장이었는데 죄는 자가가 짓고 곤장은 가난하고 낮은 백성들로 맞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정반대이다. 죄는 보잘것없는 우리 인간이 지어 그 죄로 사형에 해당하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아무 죄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으시고 그의 보혈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신 것이다. 죄인 된 우리를 자기의 피로 사시고 자기의 백성을 삼는 엄청난 사랑을 베푸셨으니이 얼마나 엄청난 사랑인가? 우리는 이 사랑을 깨달아 감사하며 주를 섬겨야 할 것이다.



머리에 인 돌


아프리카에 가 있는 미국의 선교사가 어느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마을 입구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는데 그 개울을 건너오는 사람마다 큰 돌을 머리에 이고 건너 와서는 그 돌을 버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상히 생각한 선교사는 동행자를 시켜서 그 까닭을 물었다. 이제 막 개울을 건너온 한 사람이 "이 개울은 비록 좁지만 한 가운데는 물살이 어찌나 센지 이런 큰 돌을 머리에 이고 지나지 않으면 모두 떠내려갑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떠내려가면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됩니다."라고 했다. 그 선교사 일행도 큰 돌을 머리에 이고 건너서 무사했다.


이 세상에는 생각지 않은 때와 장소에 생명을 앗아갈 사회의 급류가 흐를 때가 있다. 이 위험한 급류를 무사히 건너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돌의 무게와 같은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피한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감사히 그 돌을 이자. 십자가를 지자.



무겁다고 불평함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한 성도가 항상 심중에 `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하는 불평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얼마를 힘겹게 가다보니 한 곳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었다. 어디서 음성이 들려오길 "네가 진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 골라지라."고 하였다. 그는 이것저것 살펴보니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만 십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졌다. 이 황금으로 된 십자가는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다시 소리가 들리길 "다시 골라 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꽃이 활짝 피어있는 십자가였다. 아름다운 향기도 나고 해서 골라졌다. 이 십자가는 무겁지는 않는데 지고갈 수가 없었다.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할 수 없이 다시 내려놓았다.


자기의 십자가가 가장 가볍고 좋더란다.



무덤 앞에 심은 나무


헨리 비쳐라는 목사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남북전쟁 때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이 있는 곳을 지나고 있노라니까, 웬 사람이 새로 된 무덤 앞에 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래서 비쳐 목사님은 그곳으로 다가가서, "이 무덤은 당신 가족의 무덤입니까?" "아니요." "그럼 친척 되시나요?" "아닙니다." "그럼 친구라도..."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왜 여기다 나무를 심으시나요?" "사실은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내 대신 죽었습니다."


약 반년 전 그는 영장을 받았으나, 자기가 군대에 나가면 집안 식구들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고, 또 그렇다고 돈을 내고 사람을 사서 대신 군대에 보낼 형편도 못되어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웬 청년이 나타나 돈도 안 받고 자기 대신 군에 갔다 오겠다고 하더니 불행히도 전사를 했다는 것이다. 몇 달만에 겨우 무덤을 찾게 되어 나무를 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패를 달았다.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무지개는 곧 주님의 십자가의 그림자이다.


노아의 후손들의 안전한 삶의 토대가 무지개의 약속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무지개란 멸망당한 옛 인류에게 속하지 않고 그들 자신은 살아남는 은총을 입는 새 인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새 백성이다.


십자가는 새로운 인류와 새 삶의 유일한 언약이다. 또한 노아의 후손들은 아무리 비가 내리고 날씨가 비바람으로 흉용해도 구름 속에 무지개가 있음을 알아야 하고 무지개가 있는 한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며 바벨탑을 쌓을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고 절망스러운 일에 봉착한다 해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한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는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언약의 무지개와 같이 우리 삶의 절대적인 안전한 기초이다. 노아의 후손들에게 있어서 감사와 찬송의 기초가 무지개이듯이 우리에게는 십자가만이 안전, 확신, 기쁨의 언약이다.



보혈의 능력


마귀는 예수님의 피에 대한 말을 싫어한다. 우리가 직접 그러한 말로 마귀들을 공격해보면 이러한 사실은 분명해진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언급했을 때에 어떤 마귀들은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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