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TOP
DOWN


예화 모음(메아리로 아들 가르친 어머니 외)

본문

예화 모음(메아리로 아들 가르친 어머니 외)



  ▶메아리로 아들 가르친 어머니

  개구쟁이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하루는 아들이 단풍구경을 간다며 홀로 산에 올랐다.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앞산을 향해 '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앞산에서 역시 '야!'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아이는 그 쪽에 사람이 있는가 싶어 '너는 누구니?'라고 물었는데 역시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화가 났다. 그 누군가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자기 흉내만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야, 이놈아!' 하자 역시 그대로 돌아왔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아이는 한참동안 욕을 퍼부어 대다가 기진맥진해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지혜로운 어머니는 그러한 아들의 사정 얘기를 다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다시 한번 산에 올라가서 그 쪽을 향해 칭찬을 해보렴'

  이튿날 아이는 또 산에 올랐다. 이번에는 '야, 잘 있었니?'라고 하자 그쪽에서도 '야, 잘 있었니?' 했고 '우리 친구하자'고 하니 역시 같은 말이 들려왔다.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 내려왔다. 어머니는 메아리를 통해 아이를 교육시킨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고 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게 진리이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랍비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한 사나이가 자기 집안의 돌을 길 밖으로 던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랍비는 '왜 그런 짓을 하시오?'하고 물었으나 사나이는 웃기만 하였다. 20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이 사나이는 자기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땅을 남의 손에 넘기고 다른 고장으로 가려고 첫발을 떼는 순간 전에 자기가 버렸던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가 한 짓을 설사 잊고 있었더라도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자기가 마실지도 모르는 우물에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것과 '화살을 만드는 자는 그로 인해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발명가 에디슨의 이야기다. 그는 자기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정원에 가본 에디슨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원이 엉망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밤사이에 꽃 도둑이 들어와 꽃을 따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손으로 닥치는 대로 꽃을 따서

줄기가 상한 것도 있었고 심지어 뿌리가 상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에디슨은 집안으로 들어가 종이를 찾아 이렇게 썼다.

   '꽃 도둑님, 앞으로 꽃을 꺾으실 때는 부디 가위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 메모 지를 가위와 함께 정원이 잘 보이는 곳에 매달아 놓았다.

  그러자 다음날 이러한 회신이 적혀 있었다. '집 주인님, 매달아 놓으신 가위는 잘 들지 않습니다. 부디 숫돌에 잘 갈아서 놓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얼마나 여유로운 모습인가? 속이 상했다고 가시 돋친 말을 하면 결국 그 말이 내게로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은혜롭고 덕스러운 말을 하도록 노력하자. /박상훈 목사



  ▶우리는 덴마크라는 나라의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국토라야 남한의 반도 안 되는 땅이요 인구라야 4-5백 만 명이니 서울시 인구의 약 삼분의 일쯤 되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1600년대에는 그 유명한 바이킹족으로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에 의해 바이킹족은 패전하고 말았습니다.

  전쟁 배상으로 가장 비옥한 땅인 '딕'이라는 지역과 '홀스타인'이라는 지역을 하나는 독일에서 다른 하나는 오스트리아 내주고 말았습니다. 남은 땅은 모래땅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돌아온 병사들은 술 먹고 도박하고... 그냥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땅엔 지하자원도 없습니다. 자연 기후도 좋지 않습니다. 토지도 사막뿐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이제 우리는 끝났다'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을 때, 전쟁에서 돌아온 패잔병중 공병상사 '달라스'라고 하는 청년이 한 손에 성경 들고 한 손에 괭이 들고 군중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친애하는 덴마크 국민 여러분, 칼로 잃어버린 우리의 조국 괭이로 찾읍시다. 해적 질로 잃어버린 도덕, 성경을 통해 찾읍시다.'라고 외쳤습니다.

  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룬두비'목사입니다. 그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덴마크 사랑'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누구하나 거들떠보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어려운 그 땅을 살리려고 나무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나무 심어 안되면 저 나무도 심어보고, 저 나무 심어 안되면 또 다른 나무 심어보고, 그러다가 어느 산골에 있는 이름 없는 나무를 심어 조림하고, 조림하다보니 그 땅이 옥토로 변해, 옥토가 되니 그 땅이 초원이 되어지고, 초원 따라 낙농을 해서 소를 먹여 세계적으로 우유와 버터와 치즈를 만들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소득 높은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룬두비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했습니다. 술과 노름으로 인생을 허비하던 청년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한 손에 성경 들고, 한 손에 괭이 들고' 일을 하기 시작해서 그런 역사를 이루어 냈답니다.


 

  ▶브라질의 오지에서 의료활동을 펼친 '멜란드' 선교사 부부는 네 번이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풀리오 인디언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인디언들은 그들을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말에는 자신들을 괴롭힌 백인들에 대한 증오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 부부는 비난을 감수하며 병들어 죽어 가는 인디언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인디언들은 '존경하는 백인'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 후 멜란드 선교사 부부는 인디언과 동일한 옷을 입었습니다. 동일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10년 만에 인디언들의 언어를 배워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인디언들이 그들을 '백인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한번은 선교사 부부가 무릎을 꿇고 앉아 부상당한 인디언 소녀의 발을 씻어주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추장이 선교사 부부에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인디언의 발을 씻어준 백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그때부터 인디언들은 선교사 부부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의 사랑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세상이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기독교인들에게 관심을 끄는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회복'이란 영화입니다. 

  그 영화의 스토리는 현재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2008년 봄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40키로 떨어진 아리엘이라는 작은 마을에 예수를 믿는 유대인가족 '아미'네 집에 뜻밖의 선물바구니가 배달되었습니다. 

  사탕과 초콜릿이 잔뜩 들어있던 바구니를 여는 순간, 폭탄이 터졌고 아미는 끔찍한 부상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테러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로의 위협이 아닌, 같은 민족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를 열심히 전하는 유대인 전도자 가정을 향한 폭탄테러로부터 방화, 폭력, 살인, 가택연금은 물론 주일 예배를 방해하는 훼방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강한 저항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 유대인들을 '메시아닉쥬(Messianic Jew)' 즉 '믿는 자, 혹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기를 소원하며 매우 위험한 현장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인류의 마지막은 바로 그들 속에서 완성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닉쥬는 지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주님을 믿고 전하는 모든 유대인들이 해당됩니다. 베드로, 바울, 사도들, 초대교회성도들, 또 디모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들은 많은 핍박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이방인이 아닌 동족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를 신실히 믿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수 때문에 모든 삶의 방향과 길을 바꾸고 믿음의 길로만 걸어갔던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던 부자가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도착하자 천사가 그를 맞이했습니다. 천사는 부자가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안내하겠다고 했습니다.

  천사를 따라가는 부자는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자신에게 걸맞을 듯한 대저택들이 거리에 즐비했습니다.

  대저택들을 둘러보면서 천사의 뒤를 쫓던 부자는 아름다운 저택들 때문에 가슴이 설렛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어쩐 일인지 대저택이 들어선 거리를 지나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거리가 모두 끝나고 아주 허름하고 낡은 판잣집 앞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습니다. 천사가 그 판잣집 앞으로 다가서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이 집에서 생활하셔야 합니다.' 부자가 보기에는 그곳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깜짝 놀란 부자가 천사에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나를 보고 이 집에서 살라는 겁니까? 저쪽에 있는 대저택들은 주인들이 없는 것 같은데 내버려두고 어째서 이런 허름한 집을 주시는 겁니까?'

  천사가 말했습니다. '죄송하군요. 당신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올려 보낸 재료로는 아무래도 이런 집밖에 지을 수 없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가 하인과 함께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흙이 묻은 구두를 닦지 않은 하인을 스위프트가 크게 나무랐습니다.

  하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구두를 닦아 봤자 주인님께서 나들이를 하시게 되면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게 아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오후, 스위프트는 호텔 주인을 불러 저녁 식사는 한 사람 분만 차려 오라고 일렀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하인은 놀란 얼굴로 달려와서는, 주인님을 모시고 다니려면 자기도 식사를 해야 되는데 무슨 영문이냐고 하면서 배가 무척 고픈 시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위프트가 그 모양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이 사람아, 저녁은 먹어 뭣하나? 나들이를 하고 나면 어차피 다시 배가 고파질텐데…'하고 말하자, 그제야 하인은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은 어제와 오늘이 같다고 느껴져 마냥 지루해 합니다. 하루의 생활이 의미 없는 반복적인 일이라고만 여긴다면, 하루는 고통스러운 노동에 불과합니다.

  청소년 여러분! 하루의 성실이 먼 미래의 영광을 줍니다. 오늘의 수고로움이 자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짐은 건축학과를 나와 건축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친한 친구가 찾아와서 짐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기 설계도대로 집을 지어주게나.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가장 좋은 재료를 써야 하네. 계산서는 그때그때 보내주게'

  짐은 곧 일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재료를 쓰고 일 잘하는 목수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난 후부터는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하여 값싼 재료와 서투른 목수를 쓰게 되었습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 짐은 친구에게 열쇠와 청구서를 내놓았습니다. 친구는 짐에게 수표를 써주면서 집 열쇠를 다시 건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이 집은 자네가 학교를 나와 지은 첫 작품일세. 난 이 집을 자네에게 주고 싶네 이 열쇠를 받게. 그리고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빌겠네.'

  짐은 그 새집에서 그 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습기가 벽에 차 오르고 지붕은 물이 새고 창틀이 뒤틀려 황소바람이 몰려왔습니다.

  그는 긴 겨울동안 양심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송옥영씨는 그의 글 '세뇌된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동물과 다른 다섯 가지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⑴죽음이 다릅니다. 동물은 얼마든지 죽여도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면 큰 죄입니다. 살인은 가장 큰 죄입니다.

  ⑵가치가 다릅니다. 동물은 사고 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고 팔 수 없습니다. 인신 매매 범은 큰 죄인입니다.

  ⑶실험이 다릅니다. 동물을 실험할 수 있어도, 사람은 실험할 수 없습니다.

  ⑷약육강식이 다릅니다. 동물 세계에서는 약한 동물은 강한 동물의 먹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는 강한 사람을 약한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⑸윤리와 도덕이 다릅니다. 동물세계에는 윤리나 도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윤리와 도덕을 벗어나면 이미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더욱 더 귀한 존재입니다.



  ▶루마니아의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탄압할 때의 일입니다. '플로레스쿠' 목사를 체포하여 모진 고문을 가합니다. 그들의 요구를 듣지 않자 플로레스쿠 목사의 아들을 잡아 왔습니다. 아들은 14살이었는데 믿음이 강한 소년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매질을 하고 고통을 주었습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저들의 요구를 들어야겠다. 네가 고통 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아버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배교자 아버지를 갖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제 걱정은 마세요. 끝까지 견디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예수님을 위해 기쁨으로 죽겠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아들을 거꾸로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모질게 때렸습니다. 피가 감방을 적셨습니다. 14세의 '알렉산더'는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소년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잘 싸웠습니다.



  ▶대구 하면 사과, 사과하면 대구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 유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대구지역에서 활동했던 애덤스 선교사는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과 씨를 가져왔다. 자기 집 앞마당에 사과 씨를 심고 물을 주며 잘 보살폈다.

  선교사의 집에서 재배한 사과나무는 대구지역에 확산되었다. 대구사과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고 탐스러운 사과가 되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 축복의 종자를 심어야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받는다. 믿음의 기도를 하지 않고, 말씀을 믿지도 않고, 봉사를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지도 않을 때 어찌 복을 받겠는가?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복을 받도록 씨앗을 심어야 한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는 비결을 알고 실천해야 복이 임한다.

  하나님의 손에 축복의 씨앗을 올려놓을 때 30배 60배 100배 이상의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고수철 목사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3,499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