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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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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에 대하여


 


 


 


 


 


     강철의 단련


 그리스도를 따르자면 좋은 강철로 만든 연장처럼 되어야 한다. 그저 무쇠가 되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너의 일터인 세상보다 더 여문 강철이 되어야 한다. 모름지기 연마하고 기도해야만 이 일을 이루어낼 수가 있다. 여문 강철이 되는 것만으로도 넉넉지 않다. 연장이란 갈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 너의 형제가 너를 억세게 움켜쥐고 숫돌에다 갖다 대고 있다고 해서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는 또 선반 위에 올려 진다. 이 일은 단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교회가 너를 꼭 조여잡고 연장을 만드는 선반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너는 세상이라는 쇠붙이를 스스로 다룰 수가 있게 된다. 너 자신이 세상에다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새겨줄 수 있는 것이다. 쇠붙이는 여물다. 너는 너의 일을 조심성 있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너무 성급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너 자신까지도, 아무리 좋은 연장이라도 닳지 않는 것은 없는 법이다. 너는 무디어진다. 날카로움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단체가 다시 너를 갈 것이다. 아마도 너를 모루에다가 올려놓고 벼리기도 할 것이다. 또는 너를 다른 연장으로 개조할 수도 있는 일이다. 왜 못하랴? 좋은 일을 위해서 너 자신을 처분대로 맡겨두라.


 


 


 


 


     경건의 연습


 막스 비어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는 비양심적인 악인 로드 죠오지 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음뿐 아니라 행동에도 야비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름답고 순결한 미어리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얼굴이 저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의 아내가 될 수는 없어” 하고 그를 거절했습니다.


 로드 죠오지 헬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고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인자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미어리에게 청혼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하게 된 그는 날마다 그의 위선을 감추고 참을성 있게 너그럽게 보이려고 힘썼습니다. 좋은 사람같이 보이려고 끊임없이 그의 나쁜 성질을 억눌렀습니다.


 어느 날 옛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로드 헬의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면이 벗겨졌을 때 거기에는 거룩한 얼굴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얘기는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사람은 날마다 노력했던 만큼의 선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인격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여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경건의 훈련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는 경건 생활에 대해 정제된 지혜를 제공해주는 고전으로는, 16세기 도미니칸 수도회에 속했던 평신도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연습]을 들 수 있다.


 그 책에서 그는 편지와 대화를 통해. 눈 코 뜰세 없이 바쁜 일상생활 중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계속 자각하며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지 않는다. 때때로 하나님을 잠시 생각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며, 당신의 슬픔을 그분께 내려놓고, 슬픔 가운데서도 당신에게 주시며 이미 주신 은총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산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하나님은 되도록 자주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당신의 슬픔을 위로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식사할 때든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라도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라. 잠깐잠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은 크게 외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러한 경건의 훈련은 우리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며,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자주 생각하도록 우리 마음을 훈련시킬 때, 이루어질 수 있다. 기도의 주제가 되지 못할 만큼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없다. 우리가 연습하고 훈련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4:8


 


 


 


 


      교활한 여우


 영리한 동물에 대하여 토론하다 보면 결국에는 교활하고 간사한 여우가 등장하게 됩니다. 여우는 자연계에서 가장 민첩하고 대담한 동물입니다. 대부분 동물들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지만 쫓기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여우도 있습니다. 여우는 잘 달아나는 자기의 능력을 너무 믿기 때문에 사냥꾼에게 잡아 볼 테면 잡아 보아라 하고 놀려댑니다.


 더구나 여우는 장난을 치면서 달아납니다. 미국에는 6,000평마다 1마리정도의 여우가 있습니다. 100년 전만해도 20,000평마다 1마리 정도의 여우가 있었습니다. 만약 여우가 덫을 보게 되면 그는 그것으로 장난칠 궁리를 합니다. 사냥꾼을 비웃듯이 덫의 사슬을 풀어 놓고 달아나 버립니다.


 여우는 자기 새끼를 매우 잘 보살피곤 합니다. 일정한 시기까지 굴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사냥하는 법을 훈련시킵니다. 그들은 어떤 먹이에게 살금살금 접근하다가 마침내 덮치는 법을 훈련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원래 야행성 동물인 여우는 농부에게 가장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곤충이나 과일도 먹기 좋아하지만 메추라기, 토끼, 닭, 오리 등도 아주 좋아 하기 때문입니다.


 여우의 집은 땅 속에 파놓은 단순한 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우는 매우 영리합니다. 여우는 땅 속에 파놓은 거주지에 둘 내지 세 개의 출입문을 짓고, 여기에 여러 개의 가장된 터널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의 적을 교묘히 속이고 있읍니다.


 예수님이 생존해 계실 당시에도 민첩한 여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우가 모든 사람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우를 말썽만 일으키는 하찮은 동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처럼 하찮은 여우도 살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지적하시면서 그러나 자기를 따르려면 세상에 대한 모든 사랑을 단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다정한 친구나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을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그들을 사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버릴 수 없다고 불평합니다. 주님!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가난에도 처하게 하셔서 우리를 훈련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몇 년 전 제가 약 3주간의 미주여행을 하면서 어느 분으로부터 들었던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어느 미국공과 대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은 미국 동부에 있는 어느 공과대 학생인데 그의 아버지는 과거에 한국에서 20여 년간 선교사로 일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을 언제나 동경하며 특별히 한국 여성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공과대학에서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중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던 중 한국 여학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중국 선교에 대한 소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마치고는 다시 전에 다니던 공과대학으로 돌아와서 남은 기간을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에 목사로 들어 갈 수는 없기 때문에 기술자로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에게 그분에 대해 말씀을 전해준 분은 그와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고 그가 결혼한 후에는 그들과 이웃해서 살던 부부인데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 미국인 대학생 부부는 여름에도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있고 밤에 잠을 잘 때에도 베개를 베지 않고 그냥 바닥에 누워 자고 그리고 슈퍼마켓에 식품을 사러 가서도 꼭 낱개로 헤아려서 산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장차 선교하러 갈 중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쉽고 안일하게 살아가도 되는 그러한 값싼 것이 아닙니다. 부단한 자기 훈련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값비싼 것입니다.


 


 


 


 


      기도훈련


 사역을 위임받아 스코틀랜드 서부의 덤바톤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로서 책임을 맡아 떠나기 몇 주일 전 나는 오랜 친구이며 목사인 티 에이 멕퀸스톤을 방문하였다. 그는 부드럽고 자상하게 내게 말하였다.


“그래함 씨(그는 항상 씨라는 호칭을 붙였다), 일과표는 빽빽하게 채우고 마음은 텅 비워놓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정작 왕이신 그분을 잠잠히 기다리는 데는 아주 적은 시간을 보내도록 끊임없이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분주함은 영혼의 막힘을 초래할 수 있으니 복스러운 기회를 분주함으로 대신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십시오.”


 내가 사역하는 동안 그의 당부를 얼마나 자주 실감하였는지 모른다. 다른 많은 일터, 때로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기도할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시간은 차선과 최선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탈취자이다. 그러나 시간과 더불어 기도를 방해하는 동맹자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방만함일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기독교가 너무나 자주 인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치료로 인식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병원에 가라. 그러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 자상한 보살핌과 관심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성경에서 병원이 아니라 병영을 발견한다. 성경은 의사가 아니라 훈련 교관이다. 여기서 우리는 연병장에서 훈련을 받는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유혹에 지지 말라. 하나님께 너 자신을 맡기라’는 교관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실제적인 헌신


 훈련이 없는 헌신은 휘발유 없는 고급 승용차와도 같습니다.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아무 데도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참되고 진지한 헌신이라 할지라도 훈련을 통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훈련이란 죄에 대해서는 “안 돼”, 반대로 의에 대해서는 “예”라고 말하며, 마땅히 행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참으로 하기를 원하는 것들에는 크게 힘을 기울여 훈련을 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운동장에 뛰어나와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에 열을 올리며 연습을 합니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 연구하며 연습합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몇 년씩이나 걸려 가며 그의 요리 솜씨가 경지에 이르도록 계발합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국제회장이었던 론 쎄니 씨가 내게 이런 말을 들려 준 적이 있습니다.


“ 나는 평생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하려고 노력해왔소.”


 훈련은 우리의 능력을 하나님의 목표에 맞추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하고 싶다고 하는 욕구는 우리의 능력을 우리의 목표에 중점을 맞추게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힘써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들”을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훈련의 의미와 가장 가까운 동의어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인 절제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절제하는 사람은 죄가 그의 구미를 당길 때는 “안 돼”라고 말합니다. 또한 의로운 일에 대해서는 “예”라고 말하며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의 훈련


 광야 기간의 시험이 북경의 왕 밍따오 박사에게 왔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는데 그가 만일 타협하지 않는다면 중공에서 투옥되어 고난을 받게 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기를 소원했었는데 하나님의 부름과 훈련으로 그것이 좌절됐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고 외국에 나가 훈련을 계속 받아 위대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포부를 갖게 되었다.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훈련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몇 달 후 하나님께서는 나를 집에 가두시고 마루를 쓸고 밥을 짓고 설거지하고 옷을 수선하는 등의 집안 허드렛일을 하게 하셨다. 처음에 나는 불행을 느끼며 나를 이와 같이 대하시는 그분께 불평했었다. 그러나 조금 뒤에 나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비천한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삼 년이 자난 뒤 나는 이런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위대한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야망뿐만 아니라 위대한 선교자가 되고자하는 포부까지도 포기했다. 뿐만 아니라 말단의 지위도 원치 않았다. 대신에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평생 동안 비천한 가사일 만 보라고 하시더라도 기꺼이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모든 헛된 소망과 야심을 포기했다. 이 일들을 회상해볼 때, 듣기에는 어렵지 않게 들리지만 그 당시 그것은 많은 눈물과 투쟁과 어마어마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했다. 이러한 호된 시련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문을 열어주셨고 몇 해지나지 않아서 사역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서, 나는 그 엄격한 훈련이 없었더라면 높은 명성에 대한 욕심과 대단한 직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사역이 내게 위험한 것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 가지 목적


 우리는 온갖 종류의 더러운 것들(예를 들어 더러운 생각, 거짓된 신념, 파괴적인 행동이나 습관 등)을 항상 끌어 모으는 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나 죄로 물든 환경의 영향을 받고 삽니다. 금과 은이 정제되고 난 다음에야 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듯이 우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정련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은 세공사는 은을 조각조각 빻아서 도가니에 넣고는 그 도가니를 적당한 온도의 불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는 은이 녹을 때까지 주의 깊게 관찰합니다. 그러다가 이물질이 도가니 맨 위로 올라오게 되면 은 세공사는 그 이물질들을 제거해 냅니다.


동시에 은 세공사는 그 은이 너무 높은 열 때문에 손상을 입지 않도록 불 속에 있는 은을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불을 더 뜨겁게 해서 이물 질을 제거해 낼 때마다 은 세공사는 도가니 위로 몸을 굽혀 녹은 은에 자기 모습을 비쳐봅니다. 그 모습이 처음에는 희미해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지만, 불의 강도를 높일 때마다 얼굴 모습이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은 세공사가 자기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있을 때 정련 과정은 모두 다 끝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가지,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든다는 목적을 위해 당신을 부수어서 고난의 도가니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훈련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극적으로 다루셔서 필수품들에 대하여 감사하도록 가르치시며 사치품들을 동경하지 못하게 가르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도 훈련시키실 것입니다. 그분은 질병, 자동차 사고, 계획상의 차질 등을 통하여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암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직장을 빼앗으시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초래하는 대수술을 수행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에 항상 감사하며, 매일매일 터지는 일들에 대하여 놀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삶 속에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으로 채우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기쁨과 경이와 평화의 날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훈련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와 같이 훈련시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수리는 높은 벼랑에 집을 짓고 새끼를 깝니다. 새끼가 날아다니려고 할 때쯤 되면 어미는 둥지를 다 흩어버립니다. 그리고 새끼 독수리가 낭떠러지 밑으로 푸드득거리며 날려고 할 때에 어미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새끼가 벼랑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쏜살같이 내려가 새끼를 어깨 위에 얹고서 다시 벼랑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곤 또다시 새끼를 내던져서 날게 하고, 떨어지려 하면 어깨에 얹고 올라옵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시련을 당하게 하고 난관을 극복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작은 독수리가 날짐승의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독수리가 된다는 것은 결 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부단한 훈련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훈련의 기쁨


 사람의 마음속에는 늘 두 가지의 마음이 있어서 작은 일에도 서로 다투는 의지의 대립이 끊이질 않습니다.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부지런한 마음과 게으른 마음.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 소극적인 마음과 적극적인 마음 등입니다. 이런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그냥 두면 대체로 이기는 쪽은 항상 게으른 마음과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고 고장 난 사람은 항상 자신의 부정적이고 게으른 욕망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놀고 싶은 마음. 잘못된 마음이 일어날 때. “그럼. 안 돼.”하고 스스로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통제하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어느 한 순간의 각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훈련을 거듭함으로 해서 단련되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커피나 텔레비전 시청을 한 일주일쯤만 통제해보십시오. 물론 마음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마셔도 괜찮아. 마시면 안 돼.” “오늘만 봐도 괜찮아. 보면 안 돼.” 작은 습관 하나를 고치고 끊는 데도 우린 끊임없이 넘어지고 좌절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작은 것을 참고 견디는 훈련에서부터 우리들의 의지는 강해집니다. 처음부터 크게 많이 길들여지고 인내하려고 욕심내지 마십시오. 어제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을 오늘은 인내하고 견딘다면 그것이 아주 작은 일이라도 여러분의 의지는 그만큼 강해지고 단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작은 일. 쉬운 일에서부터 자신의 의지를 단련한다는 생각으로 참고이기는 훈련을 거듭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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