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주제별 예화모음)
본문
판단(주제별 예화모음)
▣ 외모로 판단하는 잘못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상영이 되었던 영화 「아리비아의 로렌스」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실제 인물 토마스 로렌스의 일대기이다. 그는 영국의 탐험가요 고고학자요, 군인이었는데, 이미 아는 대로 로렌스는 육군 장교로서의 복무를 그만두고 영국공군에서 항공기 정비병이 되었다. 가끔 그는 토마스 하디의 집에 가서 그들 부부와 함께 차를 마셨다. 어느 날 오후 그는 토마스 하디의 집에서 돌체스터 시장의 부인과 한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시장 부인은 모욕을 느꼈다. 그래서 시장 부인은 하디 부인에게 "나는 일생 동안 졸병과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신 적이 없다" 고 프랑스어로 말하였다. 이 부인은 이 공군 정비병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깊은 침묵이 흘렀다. 드디어 로렌스는 예의바르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담, 죄송합니다만, 하디 부인은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제가 통역을 해 드릴까요?" 이 말을 듣고 시장 부인은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 참으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비록 외모와 실제가 다같이 보잘 것 없다고 알지라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결코 그런 자세를 가져서 는 안된다. 외모뿐 아니라 소문이나 다른 간접적인 경로를 통하여서 도 우리는 그런 잘못을 범하고 있다. 비록 보잘것없이 보여도 한 인격으로 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아 그렇습니까 / 김춘섭
▣ 서둘러 판단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술 취한 것을 보았더라도, 그 사람이 심지어 간음 현장에서 잡혔더라도 한 번의 행위는 그 사람이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부족하다. 노아는 한 번, 롯은 두 번 술 취했다. 그러나 그들을 술주정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베드로는 불경스러운 말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베드로를 불경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어떤 타이틀을 얻으려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한 번 본 것에 근거해 누군가를 성미가 급하다거나 도둑놈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심지어 누군가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다 해도, 그를 그런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시몬은 막달라 마리아를 죄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었다. 진실하게 회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광대해서 성품을 변화시킨다. 결코 어제에 근 거해서 결론을 내리지 말라. 우리가 지켜야 할 법칙이 있다. 죄를 책망해야 할 때, 그 죄를 짓는 사람을 가능한 한 용서해 주는 것이다. 교만하지 않고 긍휼 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파렴치하고 악명 높은 죄인과도 터놓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재미있어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교회분리론자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판을 해야 한다. 늑대가 양 무리 가운데 있을 때 그 늑대에 맞서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은 사랑의 행위이다.
날마다 예수님 마음 가까이 / 버나드 뱅글리 편집
▣ 섣불리 판단하는 경향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볼썽사납지만, 내가 하면 단지 긴장한 탓이다. 그가 자기 식대로만 하면 고집불통이고, 내가 그러면 단호함이다. 그가 친구를 싫어하면 편견이 있는 것이고, 내가 친구를 싫어하면 그건 단지 인간 본성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가 아부를 좀 하면 손을 비벼대는 것이고, 내가 그러면 머리를 좀 쓰는 것이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데 시간을 들이면 너무 느려터진 것이고, 내가 그러면 신중한 것이다. 그가 잘못을 끄집어내면 까다로운 것이고, 내가 그러면 분별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판단한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 하는 대로 자신이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지휘관 한 명이 막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전방에 나갈 지원자를 뽑고 있었다. 그는 지원자는 두 걸음 앞으로 나와 서라고 했다. 그 순간 부하 한 명이 전갈을 들고 오는 바람에 그는 잠시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지휘관이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장병들을 쳐다보니 일렬로 늘어선 장병들의 행렬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장병들을 나무랐다. 그러나 그는 모든 장병이 두 걸음 앞으로 나와 서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남들을 섣불리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인내는 우리가 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배꼽없는 사람은? / 권상혁 엮음
▣ 판단으로 인한 실수
러시아의 한 작가는 평소에 마음에 품고 존경해오던 「대위의 딸」의 작가이자 시인으로도 유명한 푸시킨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푸시킨 집의 정원에 들어서 현관에 다다르는 순간,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조그맣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못생긴 사나이가 뛰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의 없는 사람 같으니라구. 저런 사람이 선생님 댁을 드나들면 오히려 선생님의 체면만 깍일텐데….”
그는 멀리 정원으로 뛰어가는 그 사나이를 홀낏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옷매무새를 고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하인에게 그는 정중히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푸시킨 선생님을 만나뵈러 왔습니다.”
“방금 나가셨는데 못 만나셨어요?”
“예? 그럼 방금 나간 그 사람이 푸시킨 선생님이란 말입니까?”
“예, 맞아요.” 그 순간 그는 눈에 보여지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해버린 자신의 과오에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의 외모만을 보고 경솔히 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늘 사람들의 장점을 보며 그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 묵상: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은 없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아침, 요란한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 주인은 내다보지도 않고서 그것이 푸른어치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푸른어치새는 늘 그렇게 요란하게 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귀에 아름다운 새 소리가 들렸습니다. 궁금하게 여긴 그는 창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아름다운 소리의 주인공도 푸른 어치새였습니다. 그 동안 푸른 어치새에게 가지고 있던 ‘참 시끄러운 새야’라는 편견이 깨지게 된 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편견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숨겨진 이면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외모와 자주 보이는 모습들을 통해 하나의 틀 속에 ‘이런 사람이야’라는 결론을 지어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외모로, 또는 우리의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을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십시오.
* 기도: 주님! 늘 사람들의 새로운 장점을 발견하게 하소서.
* 묵상: 잘못된 나의 편견들을 정리해보고 고쳐나갑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바른 판단
한 젊은이가 나이 서른 둘의 약관에 은행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이 진급은 그의 야망을 훨씬 앞지른 것이어서 그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이 많은 이사회의 존경하는 이사장을 만나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은행장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자문을 받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행장 직분을 수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사장에게 물었습니다. “바른 판단을 하시오.” 이것이 이사장의 간단한 대답이었습니다. 젊은이는 한참 그 답을 생각하고 있더니 말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매우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는 없나요? 제가 어떻게 하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까?” 존경받는 이사장은 대답했습니다. “경험하십시오.” 좀 화가 난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장님, 제가 자문을 구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닙니까? 저는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런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까?” 이사장은 말했습니다. “틀린 결정을 내리는 것이요.”
영적인 성숙은 많은 실수 뒤에 오게 됩니다. 헌신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헌신이란 비록 여러분이 실수하고 또 실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그 실수로부터 인생을 배우는 것입니다.
- 화끈한 예화 / 웨인 라이스
▣ 하나님의 뜻으로 상황을 판단하라
너무 쉽다고 생각될 때, 이것쯤은 내 경험과 상식으로도 너끈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방심할 때 우리는 덫에 걸리고 만다. 당신의 지식이 아무리 풍부해도, 당신의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당신의 처세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당신은 유한한 인간에 불과하다.
파일럿들 가운데서도 가장 숙달된 파일럿들이 뜻밖에 평이한 비행 중 사고로 죽는 비율이 높은 원인을 아는가? 너무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계기판을 보지 않으므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일럿들을 훈련시킬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기판을 철저히 바라보고, 자신의 감을 믿지 말고 계기판을 믿으라고 가르친다. 당신은 영리하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그 영리함이 오히려 당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 당신의 인생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경솔하게 결정해 버린 일들,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라고 여겨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신속하게 처리해 버린 일들이 뜻하지 않게 당신의 덜미를 잡는 치명적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상황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지 말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판단하시게 하라.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자꾸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라.
- 「리더여,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 한 홍
▣ 권면은 하되 판단은 하지 말라
권면(Discipline)은 당신이 목격한 행동에 대해 하는 것이고(갈 6:1) 판단(Judgment)은 인격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대결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인격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마 7:1, 롬 14:13).
행위를 권면하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지만,..
인격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 스스로 성령의 역할을 대행하려고 할 때..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거나 거절당하게 된다.
우리는 단지 사람들을 용납해 주면 되고, 성령께서 적절한 때에 그의 일을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권면할 때, 자신이 직접 보았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들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의심이나 혹은 소문에 근거해서는 안된다.
또한 우리가 권면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인격 모독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인격을 모독해서는 안된다 .
- 내가 누구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中에서-
▣ 날마다 순간마다 판단의 마음과 싸우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고 그들의 잘못과 약점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며 중보하고 내 죄로 여기기로 마음먹는 이들은 그 순간부터 많은 전쟁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판단이 일어나며 평소에 항상 그러한 상태로 살아왔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전쟁을 치를수록 그동안 항상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심판자가 되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심판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악의 습관, 높은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다시 정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서 주를 부르며 주의 긍휼을 사모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적으로 어렸을 때 우리는 아주 심하게 화를 내고 남에게 아픈 말을 해야 그것이 판단이고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자라가고 예민해질수록 우리는 마음 속에 아주 작은 판단이나 미움이 일어나도 그것에 대하여 고통을 느끼며 주님 앞에 엎드러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완악함과 죽어있음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그들은 오직 타인에 대하여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항상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깨어날수록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며 자신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슬퍼하게 됩니다.
판단하는 높은 위치에서 내려가 낮은 자리에 엎드려 중보의 자리에 서기 원할 때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죽음을 당하신 주님의 자리에 나아가게 됩니다. 거기에서 주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가 낮은 곳에 처하기를 결코 원치 않습니다. 그는 우리가 낮은 곳에 있을 때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힐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수시로 우리에게 판단을 심어주며 어느 순간에 우리를 높여줍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으로 어느덧 마음이 높아지고 환경의 형통함에 마음이 높아집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 천국의 순전한 기쁨을 잃어버리며 다시 어둡고 슬퍼지며 마음이 완악해집니다. 깨어있으십시오. 항상 낮은 마음을 유지하도록 깨어있으십시오. 낮은 마음에서는 판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낮은 마음에서는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낮은 마음은 치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다고 말할 뿐입니다. 판단하지 말고 중보하십시오. 모든 보이는 악에 대하여 사죄하고 중보하십시오. 다른 이들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죄송해하며 내 것으로 여기십시오. 가르치기만 하지 말고 중보하십시오. 잔소리만 하지 말고 내 것으로 여기고 아파하십시오. 깨어있으십시오. 중보의 삶을 선택할 때 우리에게는 항상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판단이 들어올 때 우리는 다시 지옥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판단의 생각이 들어올 때 다시 주님께 죄송함을 고백하십시오. 그렇게 날마다 전쟁을 치르며 우리는 평화의 삶, 천국의 삶에 좀 더 가까이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원 목사
▣ 성경의 판단을 따르는 지혜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런 경험을 했다. 성경을 연구할 때 갈림길에 여러 번 놓였는데, 그때마다 내가 내린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은 성경의 판단과 많이 달랐다. 지극히 어리석었던 나는 성경을 제쳐놓고 나의 이성과 상식이 지시하는 길로 나아갔다. 그러나 매번 다시 돌아와 성경이 지시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다음에 나의 판단과 성경의 판단이 상충하면 나의 판단을 과감히 포기하고 성경의 판단을 따르는 지혜를 발휘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판단은 언제나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이성주의자는 무한한 지혜의 가르침을 자신의 유한한 판단에 따라 비판하려고 시도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행하시거나 말씀하실 수 있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분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많이 아실 것이다. 내가 볼 때 이해되지 않아 그분이 틀리신 것 같지만 그분이 항상 옳으실 거다’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을 때가 있었다. 그때가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말씀의 영을 받는 법」/ R. A. 토레이 <생명의삶 2009.2월>
▣ 판단하는 마음
본문: 마태복음 7: 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한 농부가 도끼를 잃었는데 틀림없이 옆집의 젊은이가 훔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옆집 젊은이의 거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길을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목소리나 그의 일거일동이 다 자기의 도끼를 훔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젊은이가 도끼를 훔쳤다고 단정하였다. 그런데 그 후 며칠이 안되어 그는 산에 갔다가 전에 잃었던 도끼를 찾아냈다. 며칠 전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방심하여 도끼를 그 곳에 두고 왔던 것이다. 이튿날, 그는 또 옆집의 젊은이와 만나게 되었다. 다시 이모저모 살펴보니, 길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음성이나 그의 일거일동이 다 자기의 도끼를 훔친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예수님이 정죄를 경계하시면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판단받는 사람을 보호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판단하는 사람을 그 판단의 흉악한 결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가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판단이 가져다주는 크나큰 영적 해악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아무리 의로운 쪽에 서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상처가 생긴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의와 불의, 그리고 지혜와 무지를 분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분별과 판단은 다르다. 분별은 영적인 지혜에서 오는 것인 반면, 판단은 분노의 영과 미움의 영을 불러온다. 분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이다. 판단은 나의 의(義)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재는 것이다. 판단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잘못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주위를 비난하지만 용서와 화해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판단의 영은 판단하는 사람의 영혼을 무디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린다.내가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다면 내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후예로, 내가 아직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란 스스로가 선악을 판단하게 하는 실과라는 뜻이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유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즉 선악과를 따 먹은 행위는 하나님이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내가 판단의 주체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판단하는 마음을 가지는 한 우리는 영적으로 순결해질 수도, 건강해질 수도 없다. 판단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면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판단하려 한다."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하나님은 과연 선한 분이시가?"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발생햇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묻곤한다. 하나님이 옳은 분인지 그른 분인지, 신뢰할 만한 분인지 아닌지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고 순종했다. 당시 사람을 죽여 제사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이방 종교의 풍속이었다. 사람을 제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계시가 왔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오직 순종하였다.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판단하고 괴로워할 때가 많다. 결국 내가 나를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판단하는 마음도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던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는 총장과 악수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혀를 찼다. “참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이 학교는 4년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사고로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수를 하고서 4년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한 것을 부끄러워했다. 우리는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우리의 판단은 빗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만 우리 인생을 공평하게 판단하신다. “너나 잘하세요.” 이 말은 요즘 개봉된 영화에서 여배우가 한 말이다. 이 말이 올해 개봉된 영화 가운데 최고의 명대사로 뽑혔다. 한 영화비평가의 글을 보니까 이 말은 영화감독이 기독교를 향해 날린 펀치라고 했다. 감옥에서 고생한 주인공이 교도소 철문을 나서면서 내뱉은 첫마디이다. 감옥살이하는 주인공을 개화하도록 보살펴온 전도사가 두부를 건네자, 두부를 바닥에 버리면서 한 말이 “너나 잘하세요” 이다. 이중적이고 모순된 사회를 향한 냉소적이고 신랄한 대사이다. 정말 비평가의 말대로 감독이 기독교의 뒤통수를 친듯하다. 그런데 이 말은 남을 가르치려면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본문의 주님의 메시지와도 통한다.“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내 눈에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뺄 수 없습니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면 먼저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야 한다. 남을 판단하려면 자기 잣대로는 할 수 없다. 세상에는 법률이라는 잣대가 있다. 그리고 이 법률에 따라 판단하는 이는 오직 판사만이 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경찰도 못한다. 대통령도 못한다. 세상도 판결이 이렇게 엄격하다. 그런데 하물며 크리스천인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 세상이 법률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 잣대로 우리도 우리 이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위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로 인해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거짓에 속아 그들을 비판하는 마음을 품지 말게 하시고 진실된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본받게 하소서. 외모가 아닌 공의로 판단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름 앞에 순종하게 하소서. 제 생각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판단의 기준을 주의 말씀으로 삼게 하시며, 주의 뜻대로 범사에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0 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를 함부로 판단하며 그들의 부족함을 헐뜯고 있진 않습니까?
▣ 판단 받지 않으시는 예수님
나는 예수님을 판단할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판단을 받아야 할 사람에 불과합니다.
나는 겁도 없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판단했다가 모든 것을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일일지라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결말은 언제나 옳았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판단해서는 아무것도 좋은 것을 단 한 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아멘!
ⓒ최용우
▣ 호랑이 등에 탄 남자
한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나무꾼이 놀라 달아나다 나무 위에 올라갔다. 호랑이가 나무를 흔드는 바람에 떨어졌는데 호랑이 등에 떨어지고 말았다. 힘껏 호랑이 등을 끌어안았는데 호랑이가 이 나무꾼을 떨어뜨리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나무꾼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자 호랑이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나무꾼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호랑이를 꽉 붙들었다.
그런데 한 농부가 밭에서 일하다 이 광경을 보고 “세상 참 불공평하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해도 사는 게 이 꼴인데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니 어디 살겠는가?”라며 탄식을 했다. 죽기 살기로 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나무꾼이 농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우화다.
내가 모르는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다. 나만 생각하고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고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갖자.
/박건 목사<예전교회>
▣ 판단을 앞서는 사랑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위를 보면서 그들을 쉽게 판단하고 비방하지만 사실 내가 정죄하고 돌을 던진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또한 이웃이 아니라 바로 가족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삶을 공유하고 있는 형제인 것이다.
-김순호 선교사의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기초’ 중에서-
형제의 허물을 보고 안타까움이 아닌 판단이 앞선다면, 위로의 손길이 아닌 비판의 혀가 움직인다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 안의 그리스도의 생명이 희미해져 감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그 생명이 여전히 첫사랑 그대로 남아있다면 우리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이 살아있을 것입니다. 형제의 흠을 보고 비판하기 전 우리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었던 우리의 죄와 허물을 십자가 사랑으로 감싸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십시오. 주님 사랑에 빚진 자 된 우리들. 겸손의 영으로 형제를 사랑하길 원합니다.
/새벽종소리
▣ 심판자
"그렇다면 네 자신을 심판하거라.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만약 네가 자신을 잘 심판할 수 있다면 그건 네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 생텍쥐페리의《어린 왕자》중에서 -
*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그에 따라 좋아하고 미워합니다. 남의 눈을 볼 때는 내 눈부터 살펴야 합니다. 내 눈에 티가 있으면 아무리 맑고 깨끗한 '어린 왕자'의 눈도 그저 흐릿하게만 보일 뿐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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